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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에타블 마을의 위치는 리옹에서 출발하는 고대 로마의 도로가 경유했던 지점으로 추정된다.<ref>A. Clerc, J. Déléaz, Colonel Henri Girousse, J. Piavoux, ''Richesses Touristiques et Archéologiques du Canton d'Izernore'', ITALIQ, 1998, p. 36 - 37 {{ISBN|2-907656-29-5}}.</ref>
 
중세에는 [[콜리니 (앵주)|콜리니]] 영주에, 그 다음에는 투아르 영주에 귀속되었다. 에타블 마을은 1402년 사보이[[사보이아 공작령의백국]]의 지배를 받았고받았으나, 1601년 리옹 조약으로 앵 지역이 [[사보이아 공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같이 병합되었다. 한때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오늘날은 성벽 흔적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17세기에 초에는 화재가 일어나 마을 전체가 화마에 휩싸이기도 했다.
 
1790년부터는 세뉴의 인구가 에타블의 인구를 일찍이 추월하기 시작했다. [[1809년]]에는 교구가 세뉴로 이전하였으며 1879년에는 코뮌청이 에타블에서 세뉴로 이전했다. [[1926년]] 선거구 개편 당시에는 에타블의 시의회 의석수가 3석이나 감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