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아시아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offbeat.persona(토론)의 29569078판 편집을 되돌림
태그: 편집 취소 되돌려진 기여
211.108.87.99(토론)의 29571398판 편집을 되돌림
1번째 줄:
'''범아시아주의'''({{llang|en|Pan-Asianism}})는 아시아주의 또는 흥아론(興亞論)이라고도 불린다. 서구열강에 대한 견제의 목적으로 [[아시아]]의 국가들이나라와 연대해야주민들은 한다는유사한 생각에서가치관을 출발하였다.가지며, 체계가유사한 확립된역사적 사상이라기보다는과정을 각국의거쳤으므로 입장과정치적 국제또는 정세에문화적으로 따라연합해야 변화하는 것이었다.한다는 [[범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도 볼 수 있다. 김옥균, 쑨원, 왕징웨이, 후쿠자와 유키치 등이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다.
 
범아시아주의의 관념은 일본 내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의 범아시아주의자인 [[오카쿠라 덴신]]은 그의 저서<ref>''[http://www.sacred-texts.com/shi/ioe The Ideals of the East(東洋の目覚め)]'',1902</ref>에서 "아시아는 하나"라는 표어를 만들어내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이 사상이 일본의 제국주의 [[프로파간다|프로파간다의]] 일부로 이용되어 [[유럽]]의 제국주의에 대항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사상으로 변질되었다지원하였다.
== 범아시아주의의 역사 ==
범아시아주의의 관념은 일본 내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의 범아시아주의자인 [[오카쿠라 덴신]]은 그의 저서<ref>''[http://www.sacred-texts.com/shi/ioe The Ideals of the East(東洋の目覚め)]'',1902</ref>에서 "아시아는 하나"라는 표어를 만들어내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이 사상이 일본의 제국주의 [[프로파간다|프로파간다의]] 일부로 이용되어 [[유럽]]의 제국주의에 대항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사상으로 변질되었다.
 
이에 반해 중국의 범아시아주의의 역사는 고대부터 거슬러올라간다. 당시는 범아시아주의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한족들은 중원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주장하여 중원의 주변 국가들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패권국으로 자리잡았으며, 이에 주변 국가들을 조공국이 되어 한족에게 충성을 맹세하였으나 [[청나라]] 말기에는 이러한 구도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후 [[쑨원]]은 [[일본]]과 친분을 쌓으면서 중국과 일본 중심의 범아시아주의를 주장하였다. 현재 중국을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은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미국]]의 그늘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현재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단결을 주장하고 있다.
줄 13 ⟶ 12:
* [[우치다 료헤이]], 《皇国史談 - 日本之亜細亜》, 1932
 
{{범국민주의}}{{일본 제국}}
 
[[분류:범아시아주의| ]]
[[분류:추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