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미쓰쿠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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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품이 강하고 과격한 면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 후계자 낙점 이후 미쓰쿠니는 학업을 멀리하고 빈번하게 요시와라 유곽을 드나들며 츠지기리(辻斬り)를 일삼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러나 18세 때 『[[사기]](史記)』의 백이전(伯夷傳)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비로소 학문에 열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 호기심이 많고 개방적인 성격으로 일본 최초로 [[라면]], [[치즈]], [[자오쯔|교자]], 우유술, 검은콩 낫토 등을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라면은 명나라 출신의 유민인 [[주지유|주순수]]로부터 중화면을 헌상 받아 시식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말년에도 [[세이잔소]]를 방문하는 손님들이나 가신들에게 빈번하게 대접하였다. 또한 아사쿠사 근교에서 수타 우동면을 뽑아내는 기술을 배워 직접 면을 뽑아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 국외의 문물에 관심이 많아 일본 최초로 네덜란드제의 메리야스 버선을 사용하였으며 와인도 즐겨 마셨다. 그 외에도 [[고려인삼]]과 잉꼬를 들여와 직접 키우기도 하였다. 외국 출신의 인사를 고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주저함이 없어 [[홋카이도|에조지]]의 탐험을 위해 흑인을 2명 고용한 뒤 대대로 미토 번의 가신으로 삼았으며 주순수를 비롯한 중국계의 망명자에게도 관대하여 가신이나 사용인으로 삼았다.
* 육식을 하지 않는 국가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을 즐겨 먹었다. 특히 그의 말년에는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겐로쿠 살생금지령|살생금지령]]이 맹위를 떨쳐 더욱 육식이 기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이를 즐겼을 뿐 아니라 특히 개를 사랑하였던 쓰나요시에게 의도적으로 들개 20여 마리(일설에 의하면 50여 마리)를 잡아 그 가죽을 헌상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