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7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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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정부에 대한 전국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1805년]]에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정정 불안이 계속된 [[1807년]] 10월, 페르난도는 〈에스코리알 음모 사건〉의 공범으로 체포되었다. 이 음모는 정부의 자유주의적인 개혁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도움을 받아 [[카를로스 4세]] 등을 추방하고 페르난드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려 한 것이다. 개혁파의 희망의 별이라는 입장에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페르난도는 음모가 발각되자 그들을 재빨리 배신하고, 부모님의 지시에 따랐다.
 
=== 프랑스의나폴레옹의 점령기통치기 ===
아버지 카를로스 4세가 [[1808년]] 3월에 [[아랑후에스]]에서 일어난 민중 폭동으로 퇴위를 하자 페르난도가 스페인 왕 페르난도 7세로 즉위했다. 페르난도는 프랑스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직접 통치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결국 페르난도 퇴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친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왕으로 세웠으며 조제프 보나파르트는 스스로를 [[호세 1세]]라고 칭했다. 그 후 스페인 본토는 [[나폴레옹]] 지배에 반발하는 민중이 조직한 [[게릴라]] 활동을 지원하는 영국군과 프랑스군 사이에서 7년 동안 [[반도 전쟁|스페인 독립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페르난도는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태로 프랑스 봐란세 궁전에 사로잡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