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7번째 줄:
}}
 
'''조선족'''(朝鮮族, {{zh-stp|s=朝鲜族|t=朝鮮族|p=Cháoxiǎnzú}}) 또는 '''한국계 중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하나로, 한국계주로 중국인을1945년 일컫는이전 용어다.간도를 20세기비롯한 만주 [[간도]]를지역으로 비롯 조선 북방 지역에 자리 잡았거나이주한 [[일제강점기한민족]] 전후집단 새로 이주한 [[조선인]]들과후손으로후손을 구성되어 있다가리킨다.
 
[[조선]]이 20세기 초반 일본일본에 침략으로의해 주권을 상실하고 [[간도협약]]으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해당 지역 조선인들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1949년 설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은 남아 있던 조선인들을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규정하고 조선족이란 명칭을 부여하였다. 특히 조선족이 밀집해 있던 연변 지역은 1952년 조선족자치구(현 조선족자치주)로 지정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중화인민공화국에서 조선족 인구는 약 200만명으로 [[한족]]을 제외한 소수 민족 가운데 13번째로 많으며, [[둥베이]](東北, 동북) 3성(省)에 살고 있다. 다만 현대에 들어 급속한 경제 발전에 따라 취업 등을 이유로 부유한 조선족들은 베이징과 상하이, 칭다오 등과 같은 대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중국 내에서도 경제력에 따라 조선족 인구가 분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명칭 ==
50번째 줄:
1945년에 한국이 해방되면서, 216만 명 중 약 절반인 100만 여명은 한국으로의 귀국을 선택하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중국에 그대로 머무는 것을 선택하였다. 중국은 중국에 남은 한국인들을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규정하고, ‘조선족’(朝鮮族)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해방 이후 벌어진 [[국공내전]](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에서 중국에 남아 있던 조선의용대는 국민당을 배격하고, 토지개혁을 지지하는 공산당을 도와서 전쟁에 참여하였다. 재중동포는 새로운 중국 건설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서, 중국 공민으로서 상당한 대우를 받는 소수민족이 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고 [[중국 공산당]]은 1952년 민족구역자치실시요강을 발표한다. 이와 함께이때 조선족의 군사적 기여에 의한 공적으로 길림성 동부에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가 생겨났고생겨났으나, 53년 종전과종전 함께이후 [[1955년]]에는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에서 [[자치주]]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이때부터 조선족 출신 인사가 자치주 주장(州長)으로 취임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 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조카 [[마오위안신]]은 연변에 건너 오면서 민족 분쟁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 특히 마오위안신은 홍색조반혁명위원회와 8·27 홍색반란단, 홍기전투연군, 노동자혁명위원회라는 [[홍위병]] 단체들을 조직하여 [[민족주의]] 성향의 조선족을 탄압하였고, 당시 인명피해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ref>황희경, [http://news.mk.co.kr/se/view.php?year=2010&no=87094&sID=507 문화대혁명 시기 조선족에게는 무슨 일이] {{웨이백|url=http://news.mk.co.kr/se/view.php?year=2010&no=87094&sID=507 |date=20140203142422 }}, 연합뉴스</ref>
 
1992년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양국의 국교 수립 이후 조선족의 대한민국 진출과 한국인의 조선족 지역 진출이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