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사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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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후임임기 = [[1824년]] - [[1858년]]
|시대 =
|출생 = [[1824년]] [[5월음력 6일4월 8일]]
|출생지 =
|사망 = [[1858년]] [[8월음력 14일7월 6일]]
|사망지 =
|개명 =
|자녀 = 양자: '''''[[도쿠가와 이에모치]]'''''
}}
'''도쿠가와 이에사다'''({{llang|ja|徳川家定}}, [[1824년]] [[5월음력 6일4월 8일]] ~ [[1858년]] [[8월음력 14일7월 6일]])는 [[에도 막부]]의 제13대 [[쇼군]]으로 12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徳川家慶)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생모는 [[아토베 마사카타]](跡部正賢)의 딸 [[혼주인 (1807년)|혼주인]]({{lang|ja|本寿院}})이다.
== 생애 ==
=== 취임 이전 ===
[[분세이]] 7년(1824년) 음력 4월 8일, [[에도 성]]에서 제12 대 쇼군·[[도쿠가와 이에요시]]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에요시의 자식은 대부분 요절하여 살아남은 이는 이에사다 뿐이었다. 유년기부터 병약하고, 남의 앞에 나서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에, 유모인 우타하시 말고는 마음을 열지 않았던 것 같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다는 설도 있다.
 
[[1841년]]에 조부인 제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의 사망 후 제12대 쇼군 이에요시의 후계자가 된다. 아버지 이에요시는 이에사다의 기량을 의심하여 한때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로주]] [[아베 마사히로 (1819년)|아베 마사히로]] 등의 반대로 결국 이에사다가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이에사다의 후계자 후보로 [[이이 나오스케]] 등이 추천하는 [[기슈 도쿠가와가|기슈가]]의 [[도쿠가와 이에모치|도쿠가와 요시토미]]를 내세우는 기슈파와 [[시마즈 나리아키라]],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내세우는 [[도쿠가와 요시노부|히토쓰바시 요시노부]](후의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추천하는 히토쓰바시파가 서로 대립하여 싸우게 된다. 이에사다는 이 문제에 있어 별다른 움직임을 나타나지 않았으나 안세이 5년(1858년) 6월 25일, [[다이로]]와 [[노중]]을 모집해 요시토미를 후계자로 정할 의향을 드러내고 7월 5일에 히토쓰바시파 다이묘들을 처분([[안세이 대옥]])하는 이례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에사다가 장군다운 행동을 보인 것은 이것이 최초이자 최후라고 한다.
 
[[1858년]] 안세이 5년 8월음력 14일에7월 6일에 향년 35세로 사망하였다.
 
== 인물 ==
* [[에도 막부막말]] 말기의 난국에도 불구하고 취임 직후부터 후계 문제가 거론될 정도로 몸이 약하여 - 일설에는 [[뇌성마비]]였다고 한다- 쇼군으로서 지도력을 보여줄 수 없었다.
* [[카스텔라]] 같은 빵이나 과자 만들기가 취미였다고 한다.
* 미국 공사 해리스의 일기에 의하면 접견시 말을 하기 전에 머리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울렸다가 내리는 행동을 취했다고 한다. 이것은 뇌성 마비의 전형적인 증상이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