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조 (1915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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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동래군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에서 [[최창익]]과 행동을 같이하다가 [[1941년]] [[중국 공산당]]의 본거지였던 [[옌안]]에 가서 모택동 일파에 가담하였다. [[1945년]]에 입북하여 [[북로당 인민군]]에 들어갔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중장의 계급으로 정찰국장, 부참모총장을 역임했고, [[1953년]]에는 [[한국휴전협정|휴전협상]]에 김일성 얼굴마담역으로 나왔다. 이때, 한국군 대표로 나왔던 [[백선엽]]에게 "미제의 개"라고 말하며, 근엄함을 보여주기 위해 얼굴에 파리가 한시간 넘게 앉아 있어도 험악한 표정을 유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김일성 빨치산파가 장악한 군부에서 입지가 좁아져 외교관으로 전향 [[1955년]]에 [[소련]]의 대사로 부임하였으나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에 고무된 [[최창익]] 등 연안파가 [[1956년]]에 해외순방 중이던 [[김일성]] 축출을 기도할 때 이에 동조해 [[소련]]과 [[중국]]에 각각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알리며 북한에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김일성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해 최창익이 김일성을 쫒아내려고쫓아내려고 시도했던 8월 당대회([[8월 종파 사건]])에 반격하였고, 결국 연안파의 기도를 무산시켰다.
 
1989년 9월,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김일성이 스탈린의 승인 하에 6.25 당시 남침을 주도하였음을 적극 증언하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90900209201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09-09&officeId=00020&pageNo=1&printNo=20906&publishType=00020 6.25 휴전회담 북측 대표 이상조씨 내한, "김일성 남침" 증언] 동아일보 1989.09.09 1면</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