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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병과 사망 ====
[[1700년]](숙종 26) 3월 26일, 인현왕후의 발병이 처음 보고됐으며, 이때의 진단명은 중증 [[통풍]]이었다. 양쪽의 다리, 특히 오른쪽의 통증이 심했으며, 환도혈 윗부분 요척 부위 근처에 붓기가 있고 통증을 견디기 어려웠으며, 시간이 지날 수록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가 점점 넓어졌다. 그리고 4월 14일부터 다리에서 경련이 시작되어 전신의 경련으로 이어지면서 상황이 심각해졌으며, 치료로 인해 가장 심각했던 경련은 점차 줄어들어 5월 5일부턴 경련은 완전히 멈춘듯 하였으나 5월 7일 붓기가 복부에까지 올라오면서 다시 비상 사태가 됐다. 5월 12일, 전날 침을 놓았던 요척 아래 아시혈에 고름 차올라 파종(破腫: 종기의 고름을 짜냄)하였으며, 6월 21일에 이르러 역시 앞서 침을 맞았던 우측 협하 부위에서도 고름이 올라 파종하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옹저]]의 치료가 병행됐다. 하반신, 특히 다리와 관절 부위의 극렬한 통증과 피부와 근육이 서로 분리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환부 주위에 가득 차오르는 고름 외에도 오심, 구토, 복통, 설사, 발열의 증상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식욕부진과 수면장애가 더해져 체력이 급속도록 나빠졌다. 이러한 증상은 약 1년간 지속되다가 [[1701년]](숙종 27) 7월 8일, 환부가 확장되어 복부에 이르러 상완혈 근처에 뭔가 잔뜩 고인 형상이 있어 손으로 눌러보면 통증이 느껴졌다하며 곧 가슴이 답답하고 손발이 차가워졌으며 설사가 10여 차례에 이르렀다. 8월 12일, 구강에 부스럼이 생기고 소변이 붉은 색인데 이 또한 제대로 나오지 않으며, 특히 야간에 다리가 아파 침수가 편치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8월 13일, 의식이 혼미해지고 이마와 허리에서 식은땀이 나고 맥박도 불규칙해지는 등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부터 급속도로 상태가 위중해져 8월 14일 축시(丑時: 오전 1시~3시)에 요양처였던 [[창경궁]] [[경춘전]]에서 사망했다. 향년 35세였다.
인현왕후 민씨는 복위된 지 8년 만인 [[1701년]] [[9월 16일]]([[음력 8월 14일]])에 35세로 승하한다. 인현왕후 민씨가 승하하고 2개월 정도가 지난 [[11월 7일]]([[음력 10월 8일]]) 숙종은 [[조선 경종|왕세자]]의 생모 [[희빈 장씨]]에게 자진을 명한다. 이때 공식적인 죄명은 장씨와 궁인들이 민씨를 저주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진을 명한 이후에 뒤늦게 수사를 시작하는 등 그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아 당시 조정 안팎에서 장씨의 무고의 사실성과 판결에 의구심과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숙종은 [[제주도]]에 유배 중인 장씨의 오빠 장희재를 처형하라는 명을 내림으로써 희빈 장씨의 저주설에 손을 들어주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