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군 (182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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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군 이경응'''(永平君 李景應, [[1828년]] [[7월8월 20일30일]] ~ [[1902년]] [[2월 1일]]/[[1901년]] [[음력 12월 23일]])은 [[조선]] 후기의 [[왕족 종실]]이다. [[조선 장조|장조]]<ref>[[조선 영조|영조]] 임금의 서자(庶子)인 [[조선 장조|사도장헌세자 이선]]의 추존 군주 묘호.</ref> 서장자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자 [[전계대원군]]의 서자이며, [[조선 철종|철종]]의 이복 서형이자, 후에 [[누동궁]](樓洞宮) 봉사손이 되었다. 부인은 정경부인 청도김씨(貞敬夫人 淸道金氏)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 휘는 경응(景應), 초명은 욱(昱)이다.
 
[[전계대원군]]의 서자였지만 전계대원군의 제사를 받들 후손이 없어서 철종의 특령으로 승적(承嫡)하여 제사를 받들었다. 이복 서제 [[조선 철종|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능령의 벼슬을 받고, 바로 왕족으로 소의대부에 봉작되었으며 최종 관직은 [[상보국숭록대부]]에 이르렀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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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젊은 시절 ===
이경응은 [[1828년]](순조 28) [[음력 7월 20일]], [[전계대원군]] 이광(全溪大院君 李㼅)과 그의 첩 이씨(李氏) 부인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이름은 욱이다. 또다른 소실이었던 염씨 소생 아들 원범은 후에 [[조선 철종|철종]]이 된다. 그는 아버지 전계대원군이 [[은언군]]의 서자인데다가, 은언군도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의 [[천주교]] 순교사건, 아들 [[상계군]] 추대 사건 등에 연좌되어서 왕족의 작위를 받지 못했다.
 
이복 형이자 유일한 적형인 [[이원경]] 역시 민진용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민진용]]은 [[노론]] 중신 [[민응수]](閔應洙)의 후손이었지만 오랫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해 몰락했고, 아버지 [[전계대원군|이광]]과 안면이 있던 [[이원덕]] 등과 불만세력을 규합하고 이원경을 추대하려 했다. 이욱은 이복 동생 이원범과 함께 다시 [[강화도]]로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