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에이 대분화: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2A00:23C7:AD1C:3100:E14B:5884:55C4:A62E(토론)의 29720825판 편집을 되돌림
태그: 넘겨주기 제거 편집 취소 되돌려진 기여
참고 문헌이 제시되지 않은 글을 삭제했습니다
태그: 되돌려진 기여 시각 편집
1번째 줄:
[[파일:Mtfuji houeisan01.jpg|섬네일|350px|후지 산 동쪽 스소노 시에서 바라본 호에이 산과 제1 분화구]]
[[파일:Fuji-suruga2 byAns illustrate Hoei-vent.png|섬네일|350px|남쪽에서 바라본 후지 산의 호에이 분화구. 1: 제1 분화구, 2: 제2 분화구, 3: 제3 분화구, 4: 호에이 산]]
'''호에이 대분화'''({{llang|ja|宝永大噴火, ほうえいだいふんか}})는 [[1707년]](호에이(宝永) 4년) [[후지 산]]이 분화한 사건을 말한다. [[헤이안 시대]]의 두 차례의 분화(엔랴쿠 대분화, 조간 대분화)와 함께 기록에 남아 있는 세 번째의 대분화이다.
 
호에이 대분화의 특징은 [[화산재]]는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에도]]까지 날아갔지만, [[용암]]이 흐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호에이 대분화에서 분출된 분출물의 양은 약 8억 세제곱미터, 즉 약 8천억 리터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분화는 [[후지 산]]의 동남측 사면에서 일어났으며, 이로 인하여 3개의 [[분화구]]가 형성되었다. 정상에서부터 차례로 제1, 제2, 제3 호에이 분화구가 겹쳐진 모양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지만, 산기슭에서 보면 크기가 제일 큰 제1분화구만 눈에 띈다. 이후 지금까지는 [[후지 산]]이 분화한 적은 없다.
 
== 후지 산의 분화 역사 ==
[[후지 산]]의 화산 활동은 세 시대로 나뉜다. 가장 오래된 '''고미타케 화산'''(小御岳火山)은 지금의 [[후지 산]]이 있는 자리에서 약 10만 년보다 이전에 활동했다. 그 다음에 '''고후지 화산'''(古富士火山)이 약 8만 년 전부터 폭발적인 분화를 반복하며 커다란 산의 모양을 갖추었다. 그 후 1만 년 전(5천 년 전이라는 주장도 있다)부터 지금의 후지 산과 같은 '''신후지 화산'''(新富士火山)으로 변모하였다. 신후지 화산의 [[분화]]는 대량의 [[화산재]]와 [[화산탄]] 등의 강하분출물, [[용암]], [[화산쇄설류]] 등을 분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헤이안 시대]]에는 특히 화산활동이 활발했는데, [[800년]]부터 [[802년]](엔랴쿠 19~21년) 연간에 대량의 화산재를 뿌렸다고 [[니혼코키]]에 기재된 엔랴쿠 대분화가 있었고, [[864년]]에는 산중턱에서 대량의 용암(아오키가하라 용암)을 분출해 지금의 삼림의 원형을 형성한 조간 대분화 등 수 차례의 거대한 분화가 있었다. 그 후에는 소규모 분화와 분기 활동 등 비교적 평온한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자세한 사항은 [[후지 산의 분화 역사]]를 참조).
 
== 시대 배경 ==
[[분화]]가 일어난 때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치세([[1680년]]~[[1709년]]) 말기로, [[에도]]나 [[교토 시|교토]], [[오사카시|오사카]] 등의 대도시에서는 [[겐로쿠]] 문화라 불리는 조닌 문화가 발전하고 있었다. [[분화]] 전년도에는 [[겐로쿠]] 15년([[1702년]])에 일어난 [[아코우 낭사]]의 복수 사건이 [[치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의 붓에 의해 인형극으로 초연되었다.
 
== 호에이 대분화의 추이 ==
줄 29 ⟶ 21:
 
이틀 후인 18일에도 『검은 재는 멈추지 않고 내려』<ref>[[오리타쿠시바노키]]</ref> 라고 재가 쏟아지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초의 [[화산재]]는 [[흰색]]이었지만, 저녁 때는 [[검은 색]]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창 [[분화]]하는 도중에 [[화산재]]의 성분이 변화했다는 증거이다. 이때 [[에도]]에 쌓인 [[화산재]]는 당시의 문서에 의하면 2촌에서 4촌(5~10&nbsp;cm)이지만, 실제로는 좀 더 적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쿄대학]] 혼고 캠퍼스의 발굴조사에서는 흰색의 잔 [[화산재]] 위에 검은 [[화산재]]가 약 2&nbsp;cm 정도 쌓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화산재]]는 강풍이 불 때마다 자잘한 먼지로 변해 오랫동안 [[에도]] 시민을 괴롭혔고, 많은 주민이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을 겪었다. 당시의 [[교카]](狂歌)에서도 많은 사람이 기침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 분화의 추이 ===
호에이 대분화는 [[1707년]] 12월 16일에 일어나 다음해 1월 1일(양쪽 다 서력)에 종언을 고했다. 이 시기의 [[분화]]는 전부 동일하지는 않고, 처음의 4일간은 격렬하게 분화했지만 그 이후에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분화가 계속되었다. 이하 분화의 추이를 설명한다.
 
* 12월 16일 : 낮 이전부터 [[분화]]가 시작되었다. [[분화구]] 근처에서는 [[부석]]이 대량으로 쏟아져 [[에도]]까지 하얀 [[화산재]]가 내렸다. 오후 3시경 소강상태에 접어들지만 저녁부터 다시 격렬해졌다. 저녁부터 내리는 [[화산재]]는 검은색으로 바뀌어 [[분화구]] 근처에서는 [[스코리아]]가 떨어졌다. [[분화]]는 밤에도 계속되었다.
* 12월 17일 : 아침경에 일단 잠잠해졌지만 그 후에 [[오다와라]](小田原)에서 [[에도]]에 걸쳐 종일 불규칙하게 재가 내렸다.
* 12월 18일 : 전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에는 소강상태, 그 후에 불규칙한 [[분화]]. [[에도]]에도 재가 내렸다.
* 12월 19일 : [[에도]]에서는 계속 불규칙하게 재가 내렸지만, 소강상태인 기간이 늘어났다.
* 12월 20~30일 : [[분화]]의 빈도와 내리는 재의 양이 줄어들었다.
* 12월 31일 : 밤이 되자 [[분화]]가 격렬해졌다.
* 1월 1일 : 미명에 폭발이 관측되고, 그 이후에 [[분화]]가 멈추었다.
 
=== 피해지역의 상황 ===
줄 46 ⟶ 27:
=== 2차 재해 ===
[[분화]]에 의해 내린 [[화산재]]는 [[후지 산]] 동쪽의 넓은 경지를 뒤덮었다. 농민들은 전답의 복구를 위해 [[화산재]]를 회수해 모래폐기장에 폐기했다. 모래폐기장의 거대한 모래산은 비가 내릴 때마다 무너져 하천으로 유입되었다. 특히 [[사카와 강]](酒匂川) 유역에서는 유입된 대량의 [[화산재]]에 의해 하천 바닥이 상승하여 여기저기에 일시적인 [[댐]]이 생겨 [[수해]]가 일어나기 쉬운 상황이 되었다. [[분화]]한 다음 해 8월 7일부터 그 다음날에 걸친 호우로 대규모의 토사류가 발생해, [[사카와 강]]의 오구치 둑(大口堤)이 무너져 [[아시가라 평야]](足柄平野)를 [[화산재]]가 섞인 탁류로 메웠다. 이 지역의 전답을 복구하는데도 [[화산재]]의 회수·폐기 작업이 필요했다.
 
== 호에이 대분화의 특징 ==
호에이 대분화는 그 규모의 거대함 이외에도 [[화산]] [[분화]]에 대해 여러가지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호에이 지진과의 관계 ===
이 [[분화]]는 일본 최대급의 [[지진]] 직후에 발생했다. [[지진]] 발생 전까지 [[후지 산]]의 [[화산]] 활동은 비교적 온화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지진의 49일 후에 대규모의 [[분화]]가 시작되었다. [[지진]]의 진원지인 [[난카이 해곡]](南海トラフ)를 동북쪽으로 연장하면 [[스루가 만]](駿河湾)을 통과해 富士山西麗의 활단층 [[후지카와 하구 단층대]](富士川河口断層帯)와 이어지게 된다. 호에이 [[지진]]의 다음날에는 [[후지노미야]](富士宮) 부근을 진원으로 하는 커다란 여진이 발생했다.
 
=== 후지산의 마그마굄 ===
[[화산]]의 [[분화]]는 지하에 있던 고온의 [[마그마]]가 지표로 나오는 현상이다. 화산의 지하에는 직경 수 km 정도의 액체 [[마그마]] 덩어리(마그마굄)가 존재한다고 상정되어 있다. 마그마굄은 지하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마그마]]를 공급받아 조금씩 부풀어 올라 분화에 의해 (내용물이 줄어들어 버려) 수축하게 된다. 지하의 마그마굄으로부터 지상까지 [[마그마]]가 상승해가는 원인은 크게 3종류로 생각된다. 첫 번째는 깊은 곳에서부터 [[마그마]]의 공급에 의해 마그마굄이 가득 차 내부의 압력이 높아져 [[마그마]]가 넘치게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주위의 압력에 의해 [[마그마]]가 밀려나온다는 것, 세 번째는 [[마그마]] 속에 함유된 휘발성분의 분리(발포)에 의해 체적이 팽창하여 마그마가 넘치게 된다는 것이다. [[후지 산]] 지하에도 마그마굄이 존재해 화산활동의 원인으로 되어 있다. [[후지 산]] 주변에서 관측되는 저주파 [[지진]]은 마그마굄이 있다고 추정되어 있는 위치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 지진이 마그마굄에 미치는 영향 ===
후지 산의 마그마굄은 호에이 [[지진]]의 강진역이어서 [[후지노미야]]의 여진은 마그마굄의 바로 근처에서 발생했다. 강진의 영향으로 커다란 진동에 의한 마그마굄의 휘발성분 분리가 촉진되었을 가능성이 추정된다. 쉬운 예로 설명하자면「미지근한 캔맥주를 흔든」상태이다. 또한 [[본진]]과 여진의 진원단층운동에 의한 지각운동의 변화가 분화를 촉진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 분출물의 성분변화 ===
호에이 대분화에서는 일련의 [[분화]]중에 [[화산재]]·강하물의 성분이 크게 변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 [[에도]]에서 내린 재가 처음에는 흰색, 그 후에는 검은 색으로 바뀌었다.
# 분화구 주변의 강하물이 [[부석]]에서 [[스코리아]]로 바뀌었다.
이 두 사실 모두 강하물 속의 [[규소]]([[이산화규소]])의 함유량이 변화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분화]] 초기의 하얀 재는 ([[후지 산]]으로서는 드물게) [[이산화규소]]를 70% 정도 함유한 [[석영안산암]]질이었다. 그 후의 검은 재는 [[이산화규소]]가 50%정도인 [[현무암]]질로 [[후지 산]]을 형성하는 일반적인 암석(용암 등)의 분석값과 일치한다. 호에이 대분화는 처음에는 [[후지 산]]치고 드물게 [[이산화규소]]가 많은 [[석영안산암]]질 [[마그마]]가 분출하고, 그 후에 [[후지 산]] 본래의 [[현무암]]질 [[마그마]]의 [[분화]]로 이행되었다고 생각된다.
 
[[화산재]]가 흰색에서 검은 색으로 변화한 원인은 마그마굄 속의 [[마그마]] 성분 분화로 상정되어 있다. 호에이 대지진 이전의 [[후지 산]]은 약 8000년간 큰 [[분화]] 활동이 없었다 (그동안 마그마굄에는 깊은 곳에서부터 조금씩 신선한 [[마그마]]의 공급을 받고 있었다). 마그마굄은 조금씩 식으면서 [[응고점]]이 높은 성분부터 결정화되지만, 비중이 무거운 성분([[철]]이나 [[마그네슘]]을 많이 포함하는 어두운 색의 결정)은 침강하기 쉽기 때문에, 마그마굄의 상부는 밝은 색의 비중이 가벼운 [[규소]]성분이 많이 남아 있게 된다. 그래서 [[분화]] 초기에는 마그마굄의 상부에 있던 [[규소]]성분이 많은 하얀 [[부석]]과 [[화산재]]가 방출되고, 그 후에 [[후지 산]] 본래의 어두운 색 [[화산재]]와 [[스코리아]]가 방출된 것이다.
 
== 현대 사회에 주는 교훈 ==
[[혼슈]] 한가운데에 있는 [[후지 산]]은 [[분화]]했을 경우,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런 까닭에 각 지방의 방재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모여「후지산 해저드 맵 검토위원회 (富士山ハザードマップ検討委員会)」를 설립해, 만일의 경우에 일어날 피해상황을 예상하여 피난·유도 지침으로 삼았다. 해저드 맵에서는 과거의 [[후지 산]]의 분화를 참고하면서 다양한 화산재해를 예상하고 있다. 그 중에서 [[화산재]]에 의한 피해의 예로『호에이 분화의 피해예상』이 상세히 검토되어있다. 해저드 맵이 제출한 중간보고서<ref>[[헤이세이]] 14년 6월</ref>와 검토보고서<ref>[[헤이세이]] 16년 6월</ref> 2건, 조사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는 [[내각부]]의 방재부문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호에이 대분화는 [[용암]]의 분출 등에 의한 피해는 없었지만, 대량의 [[화산재]]가 광범위한 지역을 뒤덮은 경우였다. 검토보고서에서는 호에이 대분화와 같은 규모의 [[분화]]가 일어날 경우, [[화산재]]가 2&nbsp;cm 이상 내릴 것이라고 예상되는 지역은 [[후지 산]] 산록뿐만 아니라 현재의 [[도쿄도]]와 [[가나가와현]]의 거의 모든 지역, 일부 북부를 제외한 [[지바현]] 전역에 이른다. 이 범위에서는 일시적인 철도·공항이 사용불능이 되며, 우천시에는 도로가 마비되고 정전이 발생한다. 또한 장기에 걸쳐 호흡기에 장애를 일으키는 사람이 나온다고 한다. [[후지 산]] 동부에서 [[가나가와현]] 남서부에 걸치는 지역은 [[분화]] 후에 대규모의 토사류와 홍수피해가 빈발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유사한 예로, [[중동]]의 [[사막]]지대에서는 ([[화산재]]는 아니지만) 모래먼지에 의한 전자기기 고장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