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차차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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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기원전 50년]]~[[24년]], 재위 [[4년]]~[[24년]])은 [[신라]]의 2대 [[군주|국왕]]으로, [[혁거세 거서간|혁거세왕]]과 [[알영부인]]의 적자이다. 이름은 '''남해'''(南解), 다른 이름은 '''민해'''(愍海)이다. 그의 칭호에 대하여는 국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 역할을 했다는 설이 있다.
 
== 왕호 ==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남해거서간(南解居西干)은 또한 차차웅이라고도 하니, 이것은 존장의 칭호로서 오직 이 임금에게만 칭한 것이다" 라고 전한다. "차차웅"이라는 왕호에 대해서 《[[삼국사기]]》는 [[김대문]]을 인용하여, "차차웅 혹은 자충(慈充)은 무당을 이른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기에, 그를 외경해 마침내 존귀한 어른을 일컬어 자충이라고 하게 되었다." 고 전하는 바, 이는 [[신라]]가 초기에는 [[샤머니즘]]의 사회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태진 교수는 "차차웅"은 가가웅으로도 읽을 수 있으며 또한 "거서간"에서 이어지는 호칭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태진 교수는 "고대부터 "ㅊ, ㅉ" 발음은 "ㅋ, ㄱ" 발음과 혼용되어 왔다. 고대 로마에서 카간을 차가누스라고 부른 것처럼 말이다. "차차웅" 또한 "가가웅, 카카웅"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는 각간을 각찬이라고도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차차웅이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호칭이 아닌 거서간에 연속성이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ref>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서울대 이태진 교수의),62쪽</ref>
 
== 치세 ==
[[6년]](즉위 3년) [[음력 1월]]에 시조 [[혁거세 거서간]]의 묘(廟)를 세웠고, [[8년]](즉위 5년)에 [[석탈해]]를 맏사위로 받아들였고, [[10년]](즉위 7년)에는 그를 [[대보 (관직)|대보]](大輔)로 삼아 군사와 국정에 대한 일을 맡겼다.
 
남해 차차웅의 치세에는 외침이 잦았다. 남해 차차웅이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두 성인이 나라를 버리시고 내가 나라 사람들의 추대로 그릇되이 왕위에 있어, 두려움이 마치 냇물을 건너는 것과 같다. 지금 이웃 나라가 와서 침범하니, 이는 내가 덕이 없는 까닭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좌우의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적(賊)이 우리가 국상(國喪)을 당하였음을 다행으로 여겨서 망령되게 군사를 이끌고 왔으니 하늘이 반드시 그들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적이 잠시 후에 물러갔다. [[14년]](즉위 11년)에 [[왜]]가 민가를 노략하여 6부의 병사들을 내보내 격퇴하였다.
* 《[[김수로 (드라마)|김수로]]》([[MBC TV|MBC]], [[2010년]]~[[2010년]], 배우:[[권성덕]])
 
== 참고 ==
* [[고구려]]
** [[유리명왕]] ([[기원전 19년]]~[[18년|서기 18년]])
== 각주 ==
<references/>
== 참고 문헌 ==
* [[진수 (서진)|진수]](3세기),《[[삼국지]]》〈[[:s:삼국지 (진수)/권30|권30 오환선비동이전]]〉
* {{서적 인용 |저자=[[김부식]] |연도=1145 |제목=[[:s:삼국사기|삼국사기]] |장=[[:s:삼국사기/권01|권제1]] 남해 차차웅 條 }}
{{신라의 왕릉}}
 
[[분류:기원전 50년 태어남탄생]]
[[분류:24년 죽음사망]]
[[분류:신라의 왕]]
[[분류:혁거세 거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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