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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키야트'''(Qiyad)는 몽골 부락 보르지긴(Borjigin) 씨족에서 나온 한 지파로서, 카불 칸(Khabul Khan)에서 시작된 씨족집단이다. 키야트(Qiyad, 乞牙惕)는 키얀(Qiyan, 乞顔) 혹은 캬운(Kiyoun, 奇渥温)의 복수형으로 '분류(奔流)'를 뜻한다.<ref>佐口 1968,P27</ref> 징기스칸의 일족인 키야트 보르지긴 씨는 그 한 일족이다.<ref>村上 1970,65-6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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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트'''(Qiyad)는 몽골 부락 [[보르지긴]](Borjigin) 씨족에서 나온 한 지파로서, [[카불 칸]](Khabul Khan)에서 시작된 씨족집단이다. 키야트(Qiyad, 乞牙惕)는 키얀(Qiyan, 乞顔) 혹은 캬운(Kiyoun, 奇渥温)의 복수형으로 '분류(奔流)'를 뜻한다.<ref>佐口 1968,P27</ref> 징기스칸의 일족인 키야트 보르지긴 씨는 그 한 일족이다.<ref>村上 1970,65-66</ref>
 
== 기원 ==
카불 칸 일족이 키야트 씨를 친한 것은 아주 오래전에 '키얀'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quotation|몽골족은 문자를 모르며 선조의 이름과 부족의 역사적 사실을 구두로 전해왔다. 이 전설에 의히면 징기스칸 탄생으로부터 2천년 전, 몽골족은 타타리(몽골고원) 밖에 거주하던 민족에게 정복되어 몰살당한 적이 있었다. 이때 살육을 면한 것은 두 남자와 두 여인뿐으로 이즐은 에르게네 쿤이라고 불리는 산맥에 거하여 둘러싸인 한 지방에 피난하였지만, 에루게네 쿤은 험한 기슭이라는 뜻이다. 비옥한 이곳에서 누구스와 키얀이라는 두 피난자 후예는 급속한 세로 증가하여,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다. 우뚝 솟은 암벽을 경계로 그 안에 갇혀버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이 민중들은 이곳에서 탈출할 대책을 강구하였다. 그들에게는 이 산맥 안에 한 산으로부터 철광을 채굴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들은 이 광산에 많은 목재를 쌓아두고 불을 붙이고 70개의 풀무로 불을 지펴 갱을 녹이고, 이 새로운 민족을 위해 통로를 만들었다. 징기스칸의 후예인 몽골조 제왕들은 이 사건을 게념하여 제사를 지냈다. 즉 새해 전야에 대장장이들은 황제의 면전에서 작열하는 철을 담금질하고 일동은 엄숙히 상제(上帝)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몽골민족의 기원으로, 몽골이란 소박하고 취약하다는 뜻이다.|[[라시드 웃딘]](Rashid Udin) 『집사(集史)』 투르크•몽골 제부족지}}
<ref>佐口 1968,P19</ref><ref>宮脇 2002,p39</ref>
 
이 전승은 [[돌궐]](突厥) 시조 설화와도 닮았으나, 『[[원조비사]](元朝秘史)』 이외의 몽골사료에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기사이다.<ref>佐口 1968,P20</ref> 이 몽골 민족 조상들이 에르게네 쿤 산맥에서 나와 일부 씨족으로 나뉘어 갔지만 차차 '키얀'이란 이름은 끊기게 되어 잊혀져 갔다.<ref>佐口 1968,P27</ref> 그러나 카불 칸은 전 몽골민족을 통일하자 그 자손들이 고전승에 근거하여 '키얀'(Qiyan、乞顔)」이라고 영예높은 씨를 친하는 씨족집단을 만들었고, 한데 묶어 '키야트(Qiyad、乞牙惕)'라고 칭하였다.<ref>村上 1970,65-66</ref> 한편 동족 차라카이 링쿠우 일족은 네구스씨라고 칭하였고 그 손자 [[암바가이 칸]]이 몽골 부락의 칸을 이었으나, 그의 계통은 [[타이치우트]] 씨라고 하여, 키야트 씨와 타이치우트 씨가 보르지긴 씨족 2대 씨족이 되어 3대에 걸쳐 몽골 칸 위를 독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