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로에네 왕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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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로에네의 수도였던 에데사는 상당히 강력한 요새이자 유프라테스강에서 가장 크고 가까운 기항지였다. 또한 도로 교착점이기도 했는데, 중국과 인도에서 서쪽으로 교역품들을 운송하는 캐러밴들이 따르던 고대 도로가 이곳에서 아르메니아 고지대와 안티오키아를 연결하던 남북도로와 교차하였다. 분명히, 에데사는 국제 무대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띠었을 것이다.{{sfn|Segal|1982|p=210-213}}
 
기원전 64년에, [[폼페이우스]]가 [[파르티아 제국]]과 전쟁을 할 때, 오스로헤네의 [[아브가르 2세]]는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집정관)|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가 [[상메소포타미아]]를 점령했을 때 로마의 편을 들었다. 아브가르 2세는 기원전 63년에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파르티아 원정 당시에 처음에는 로마의 동맹이었으나, 로마의 역사가들은 그가 크라수스를 강가를 따라 있는 안전한 경로에서 벗어나게 하고 대신에 개방되어 있는 사막으로 이끌며, 그곳에서 로마군이 불모지에서 고통받게 하고 기병 공격에 취약하게 하는 등 그를 배신을 했다고 주장한다. 아브가르는 파르티아의 장군 [[수렌 가문|수레나스]]와 접촉하여 로마군의 움직임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악명 높은 [[카르헤 전투]]가 벌어져 로마군 전체가 궤멸하였다. 전투 바로 직전에, 아브가르는 달아날 구실을 만들어 달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역사가들은 아브가르가 고의로 로마군을 배신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고 대신에 단순히 로마군을 옛 아랍 교역로로 이끌었을지 모른다고 한다.<ref>Sheldon, Mary Rose, "Intelligence Activities in Ancient Rome: Trust in the Gods But Verify", pg. 92</ref> 시리아어로 된 문헌에 따르면, 아브가르는 1년 뒤에 사망했다고 한다.{{sfn|Segal|1982|p=210-213}}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