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태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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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8년]] 장성한 아들인 [[창읍애왕]]마저 죽자, [[전한 무제|무제]] 구익부인 조씨 소생 [[유불릉|전한 소제]]을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하고 황태자로 세웠다. 그러나 [[여태후]]일족의 세도 폐해를 알던 한무제는 어린 아들 뒤에 젊은 어미가 있으면 외척의 발호와 폐단이 있을 것이라고 하여 구익부인을 역모로 몰아 살해하였다.
 
아들 유불릉을 태자로 올리자 마자, 유불릉의 생모인 구익부인을 죽인 것에 혼란스러워 한 대신들은 그 이유를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어떤 사람이 한무제에게 아들을 태자로 세우는데, 왜 그 모친을 죽이는지 물어봤더니, 한무제는 '국가에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황제들이 무능하거나 어린 것이 원인인, 불릉의 어미는 젊고 힘이 넘친다. 이렇게 되면 내가 죽은뒤 여자는 교만하고 자긍심이 커져 태후라는 이름으로 음란한 일을 마음대로 저지르니 누가 제어하겠는가? 아무도 제어할수 없게된다. 너희는 여태후의 독재와 일족의 폐해를 모르느냐'며 신하들을 책망하였다.
 
[[전한 무제|무제]]는 조첩여가 자결한 뒤에 복권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