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흥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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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궁 창건은 제13대 [[명종]]대왕이 후사없이 승하하시자 덕흥대원군의 제3남 [[하성군]] 균이 제14대 [[선조]]대왕으로 즉위한 후에 생부 덕흥군을 송나라 [[영종]]황제의 생부의 [[복왕]] 고사를 따라 생부와 생모를 각각 [[대원군]]하고, [[하동부대부인]]으로 추숭하고, 선조대왕 명으로 잠저 후원에 [[가묘]](家廟, 德興宮)를 건립하게 하였다. 그리고 4대까지 [[대군]](大君) 예로 작위를 주고, 그 이후 사손(嗣孫)들에게는 당상관 정3품 [[도정]](都正) 벼슬을 대대로 세습 및 노비와 토지를 마련하게 하였며, 관아에서는 사시제물을 보내주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마로 소실되었다가 [[광해]]조 때 다시 복원하였으며, 선조대왕 이하 역대 열성조께서 등극하시고, 얼마 후에 전배와 제향(작헌례)을 모셨다.
 
덕흥궁 건물 구성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된 정당이 있었으며, 정당 앞쪽에는 임금님이 친행할 때 [[배례]]공간인 [[배각]]이 있어고있었고, 배각 좌우로 [[전사청]] 및 [[이안청]]이 있었다. 현재는 도시 개발및 도정궁 화마로 소실되어 사진으로마 볼수 있으며, 불천지위 6위를 1950년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339번지 덕릉마을 내 [[덕릉재실]](德陵齋室)로 이전하여 영년봉묘하고, 각 기신일에 후손들이 제향을 받들고 있다.
 
덕흥궁 제향의를 보면 왕릉 제향하고, 흡사하며, 현재 [[칠궁]] 제향하고 비슷하다. 덕흥궁 제향 의례는 [[덕흥대원군궁급묘의]], [[대한예전]], [[국조속오례의]], [[춘관통고]], [[의주속등록]] 등 예서에 잘 나와 있다. 현재 덕릉재실을 [[덕흥사]](德興祠)라고 불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