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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궁(德興宮)은 조선 제14대 선조대왕의 조모와 생부모 및 백형 내외를 모신 불천지위 6위를 모신 신궁으로 불천지위 6위는 [[창빈 안씨]](중종대왕의 후궁이자 선조대왕의 조모), [[덕흥대원군]] [[이초]](선조대왕의 사친), [[하동부대부인 정씨]](선조대왕의 사친), [[하원군]] 의헌공 [[이정]](선조대왕의 백형), [[남양군부인 홍씨]](하원군 정배), [[신안군부인 이씨]](하원군 계배) 6분을 모셨다. 덕흥궁은 선조대왕이 창건 할때는 [[가묘]](家廟)라고 하였으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부터 [[사묘]](私廟), [[덕흥사]](德興祠), [[대원군묘]](大院君廟), [[대원군 사우]](大院君 祠宇), [[덕흥대원군 사우]](德興大院君 祠宇), [[덕흥대원군묘]](德興大院君廟), 덕흥궁(德興宮)으로 불리다가 [[고종]]조와서 [[덕흥대원군궁]](德興大院君宮) 또는 덕흥궁(德興宮)으로 불리웠다.
 
덕흥궁 창건은 제13대 [[명종]]대왕이 후사없이 승하하시자 덕흥대원군의 제3남 [[하성군]] 균이 제14대 [[선조]]대왕으로 즉위한 후에 생부 덕흥군을 송나라 [[영종]]황제의 생부의 [[복왕]] 고사를 따라 생부와 생모를 각각 [[대원군]]하고, [[하동부대부인]]으로 추숭하고, 선조대왕 명으로 잠저 후원에 가묘(家廟, 德興宮)를 건립하게 하였다. 그리고 4대까지 [[대군]](大君) 예로 작위를 주고, 그 이후 사손(嗣孫)들에게는 당상관 정3품 [[도정]](都正) 벼슬을 대대로 세습 및 노비와 토지를 마련하게 하였며, 관아에서는 사시제물을 보내주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마로 소실되었다가 [[광해]]조 때 다시 복원하였으며, 선조대왕 이하 역대 열성조께서 등극하시고, 얼마 후에 친히 전배와 제향(작헌례)을 모셨다.
 
덕흥궁 건물 구성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된 정당이 있었으며, 정당 앞쪽에는 임금님이 친행할 때 [[배례]]공간인 [[배각]]이 있었고, 배각 좌우로 [[전사청]] 및 [[이안청]]이 있었다. 현재는 도시 개발및 도정궁 화마로 소실되어 사진으로마 볼수 있으며, 불천지위 6위를 1950년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339번지 덕릉마을 내 [[덕릉재실]](德陵齋室, 水落山房)로 이전하여 영년봉묘하고, 각 기신일에 후손들이 제향을 받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