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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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819년1821년]] [[8월 22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포르투갈의 주앙 6세|주앙 6세]]의 사후 포르투갈의 왕위는 그 아들인 페드루 1세가 물려받았지만 이미 브라질의 황제였던 페드루 1세는 당시 일곱 살에 불과했던 딸 마리아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마리아와 결혼을 약속한 숙부 미겔이 이를 배반하고 [[1828년]] 왕위를 찬탈하였고 마리아는 외국으로 망명했다. 미겔은 오스트리아에서 당시 수상이었던 [[메테르니히]]에게 감화되어 보수반동정치를 실시하고 전제군주화를 꾀했는데, 그와는 달리 자유주의를 지지하던 페드루 1세는 [[1832년]] 직접 군대를 이끌고 포르투갈로 향해 동생과 [[미겔리스타 전쟁]]을 벌였다. [[페드루 데 수사 홀스타인|팔멜라 공]]이 이끄는 페드루 군은 이듬해 7월 리스본에 입성했고 두 달 뒤 마리아도 귀국했다. 이듬해 9월, 의회로부터 국왕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은 마리아는 [[1835년]] [[1월 26일22일]] 나폴레옹의 양자 [[외젠 드 보아르네]]의 장남인 로이히텐베르크 공 [[로이히텐베르크의 아우구스트|오귀스트 드 보아르네]]와 결혼했으나 그는 두 달만에 병으로 죽었다. 마리아는 이듬해인 [[1836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페르난두 2세|페르난두 공자]]와 두 번째 결혼을 했고, 포르투갈의 전통대로 그 또한 국왕으로 인정되었다.
 
마리아는 재위 기간 내내 포르투갈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힘써 ''교육자'' (''a Educadora'')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