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기요마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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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7년 전쟁으로 인해 조선의 기요마사에 대한 인상은 '공포의 무장'이었다. 그런데 기요마사는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에 상륙하자 즉시 군령을 내려 조선 백성에 대한 민폐를 일체 삼가하라고 하달하였다. 문제는 모든 정황이 100% 기요마사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히데요시에게 집중돼야 할 비난이나 경계의 절반이 공교롭게도 기요마사에게 떠넘겨졌다고도 볼수 있다. 실제로 기요마사는 [[사명당]]과 상당히 '친교'가 있었다.
 
이는 가토 기요마사가 2차 진주성 전투때 자신이 개발한 공성병기 [[귀갑차]]를 투입하여 진주성벽을 무너뜨리는 등 크게 공을 세워 당시 [[김천회김천일]], [[이종인]]을 비롯한 진주성에 있던 조선인들을 몰살시키는데 크게 일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구마모토와 가토 기요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