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클레멘스 1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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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클레멘스 11세'''(<small>[[라틴어]]:</small> ''Clemens PP. XI'', <small>[[이탈리아어]]:</small> ''Papa Clemente XI'')는 제243대 [[교황]](재위: [[1700년]] [[11월 23일]] ~ [[1721년]] [[3월 19일]])이다. 세속명은 '''조반니 프란체스코 알바니'''(<small>[[이탈리아어]]:</small> ''Giovanni Francesco Albani'')이다. 신앙심은 깊었으나 정치적인 역량은 부족하였다. 동양의 조상 제사 문화를 금하는 조치를 내림으로 인해 중국 청나라는 강하게 반발하며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선교지도 폐쇄당했다. 천주교의 조상제사 거부라는 항목은 조선말기 집권세력에 의한 천주교 박해의 주요 이유로 십분활용됨에<ref name=":3">[네이버 지식백과] 신해박해 [辛亥迫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따라 [[병인박해]]를 비롯한 수차례의 박해사건에 의해 많은 선교사와 천주교도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게 되었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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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 금지 조치 ===
당시 [[청나라]]의 공자 제례와 조선의 제사문화등 동양의 전례 문제가 유럽 [[기독교]] 신학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1715년에 3월 19일 교황은 단호하게 청나라의 전례를 금하는 회칙을 내려 반발이 일어났다.<ref>존 노먼 데이비슨 켈리 <옥스퍼드 교황사전> 분도출판사 2014.1월 초판 p434</ref> 이에 당시 청나라 황제인 [[강희제]]는 칙령을 내려 선교사들의 다른 활동은 모두 허가하는 대신, 포교는 불법화시켰다. 클레멘스 11세는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독일]] 북부와 [[필리핀]]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또한 빈민 구제 사업에도 열성적이었다.
 
천주교의 조상제사 거부라는 항목은 조선말기 집권세력에 의한 천주교 박해의 주요 이유로 십분활용되었다.<ref name=":3" /> 1791년 [[신해박해]], 1801년 신유박해, 1815년 을해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사건으로 선교사와 천주교도 수만명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 말년 ===
클레멘스 11세는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독일]] 북부와 [[필리핀]]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또한 빈민 구제 사업에도 열성적이었다. 클레멘스 11세는 언제나 학자다운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바티칸 도서관]]의 장서를 늘이고 [[로마]]의 문화재 보존에도 힘썼으며 [[나자렛의 요셉|성 요셉]]에 대한 신심이 돈독하여 [[성무일도]]를 만들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