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바르디아 동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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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1세]]가 1158년 [[론칼리아 법령]]으로 이탈리아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주장하고 그의 수행원들이 이탈리아 도시들의 [[포데스타]] 행정관들을 대체하기 시작하자, 1164년 [[베로나]], [[비첸차]], [[파도바]], [[베네치아 공화국]]이 조직한 이전의 [[베로나 동맹]]을 계승했다. 이탈리아 내에서 프리드리히 1세의 영향력이 감소하길 바라던 [[교황 알렉산데르 3세]] ([[알레산드리아]]라는 도시가 그를 기념하며 이름 붙여짐) 가 이를 지원해주었다.<ref name="Watt135">''The Papacy'', J.A. Watt, ''The New Cambridge Medieval History: Volume 5, c.1198-c.1300'', ed. David Abulafia, Rosamond McKitteric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135.</ref> 1167년 12월 1일 [[폰티다]]에서 결성된 롬바르디아 동맹은 베로나, 파도바, 비첸차, 베네치아 밖에도 [[크레마]], [[크레모나]], [[만토바]], [[피아첸차]], [[베르가모]], [[브레시아]], [[밀라노]], [[제노바]], [[볼로냐]], [[모데나]], [[레조에밀리아]], [[트레비소]], [[베르첼리]], [[로디 (롬바르디아 주)|로디]], [[페라라]] 같은 도시들과 말라스피나 후작과 [[에첼리노 다 로마노]] 같은 몇몇 영주들도 포함됐다.
 
신성 로마 제국으로부터 [[분리주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동맹은 황제의 권리 (Honor Imperii)에 전적으로 맞섰다. 프리드리히 1세는 이 도시 연맹에 맞섰는데, 그중 특히 1162년에 점령다하여점령당하여 파괴를 당한 밀라노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 이상 연맹에 맞설 수 가 없었다. 1176년 5월 29일 [[레냐노 전투]]에서 황제군이 결국에 패배를 당한 것이였다. 1177년에 이뤄진 [[베네치아 조약]]으로 1178년 8월부터 이탈리아 도시들이 신성 로마 제국에 잔류하기로 동의하고 그 지역들에 대한 사법권과 [[제왕들의 임직권]](droit de régale)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콘스탄츠 조약]] 합의가 이뤄진 1183년까지 6년 간의 강화가 이뤄졌다. 롬바르디아 동맹의 회원국 중 황제의 특혜를 받은 밀라노는 많은 크레모나 시민들에게 분쟁을 일으킨 특별한 지위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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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assorilievo di Porta Romana (1171 ca.).II.PNG|1171년 포르타로마나 부조에 새겨진 롬바르디아 동맹의 보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