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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처음 합력설과 단독설의 논쟁 교회에서 불거진 사건이 4~5세기에 있었던 [[어거스틴-펠라기우스 논쟁]]이다. 어거스틴은 단독설을 주장하였고 펠라기우스는 합력설을 주장하였는데, [[카르타고 회의]]에서 기독교회는 어거스틴의 이론을 체택하였고채택하였고, 이리하여 단독설에 어거스틴주의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러나 곧 [[로마교회]]는 알미니안주의로 회귀하게 되는데, 다시 어거스틴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였다. 종교개혁 당시 이러한 어거스틴주의식 원죄론에 반대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심성을 따로 바꾸어 주시지 않아도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이 [[에라스무스]]다. 여기에 반박하고 '전적 타락'설을 주장한 것이 [[마르틴 루터|루터]]의 《노예의지론(Bondage of the Will)》이다. [[에라스무스]]의 주장은 합력설에 해당하며, [[마르틴 루터|루터]]의 주장은 단독설에 해당된다. 합력설과 단독설의 논쟁은 기독교 초창기에 이미 있었고, 잘 알려진 것이 4~5세기에였 있었던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논쟁이다. [[펠라기우스]]는 합력설을 주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