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중의 저항 운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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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주기 [[제2차 세계 대전의 저항운동]]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저항 운동'''이란 [[제2차 세계 대전]] 전쟁 중에 [[추축국]]에게 저항을 하는 것을 말한다.
 
 
== 저항 ==
# 전쟁이 한창 중이던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도중, [[나치 독일]]이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무단 침공했다. 하지만 [[스탈린]]이 [[히틀러]]를 건드리면 안된다고 반대했다. 그러는 바람에 [[나치 독일]]은 물밀듯이 [[스탈린그라드]]와 [[모스크바]] 근방까지 쳐들어왔다. 이에 [[소련]] 군인들에서 얼른 [[스탈린]]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마침내 [[스탈린]]은 그 말에 동조했지만 [[스탈린]]은 무조건 후퇴금지, 결사항전이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C7LVLHs6Ig 수백만명이 죽은 역대급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2021.4.9</ref>. [[보로네시]] 지역에서도 [[나치 독일]]과 [[소련]]군의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이 전투에서는 [[나치 독일]]이 승리했었고 이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는데 [[나치 독일]] 입장에는 소련의 볼가강까지 진격할 예정이었다.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많은 소련인들이 희생되는 참혹한 순간이었다.
#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도 해방을 위해 [[제2차 세계 대전]]에 [[연합군]]에 참전하여 죽기 살기로 싸웠다. 이는 [[영국]]에서 [[인도]]가 꼭 [[연합국]]에 참전하여 도와주면 반드시 [[인도]]에게 해방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결국엔 [[인도]] 스스로 [[연합군]]에 참전하여 저항을 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정작 끝나자 [[영국]]은 약속을 거절했었고 [[간디]]의 계속된 무저항 운동으로 인해 결국 [[1935년]]에 [[영국]]은 [[인도]]에게 자치령을 주었다.
# [[1945년]]이 되자, [[중립국]]을 지키던 {{국기|터키}}, {{국기|이집트}}, {{국기|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연합국]]에 참전하여 [[추축국]]과 맞서싸웠다.
# 원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태평양 전쟁]]을 통해서 [[일본 제국]]에게 빼앗기고 이어 [[추축국]]에게 지고 말았다. 이 기회에 [[호치민]]은 [[일본 제국]]과 싸웠으며 [[프랑스]]의 식민지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었으며 [[연합국]]과 연합해 [[일본 제국]]과 싸웠다.
# [[중화민국]]의 [[장개석]]은 [[중일 전쟁]]이 터졌지만 가장 급한 건 역시 [[공산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 제국]]보다는 [[공산당]]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반박을 사게 되었고 결국엔 [[장개석]]은 [[공산당]]하고 동맹을 해야 했다. 결국, [[중국 공산당]]도 [[일본 제국]]과 저항 운동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2차 국공 합작]]이다.
# [[만주국]]에서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을 일으켜 [[일본 제국]]과 싸웠으며 이 속에는 조선의용군도 있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74991&cid=40942&categoryId=31748 독립군] 두산백과 </ref>. 이는 [[중일 전쟁]]과 [[1942년]] 이후에도 독립 운동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저항으로 안타깝게도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고, 정작 {{국기|소련}}이 [[8월 8일]]에 [[소련 대일전 참전]]을 선언해 {{국기|만주국}}을 점령한 계기로 처리되었다.
# 한편, [[필리핀]]은 [[태평양 전쟁]]에 [[미국]]의 도움으로 일찍 [[1942년]] 때에 [[일본 제국]]에게서 벗어났으나, [[후크발라합]]이라는 [[필리핀 공산당]]에 의해 [[제2차 세계 대전]]과는 전혀 별개의 저항 운동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필리핀 내전]]은 [[1946년]]까지 계속되었고, 이 내전의 결과는 [[미국]]과 [[필리핀]]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필리핀 내전]]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필리핀 국민민주전선]]까지 생겨서 [[냉전]]은 계속되었다.
# {{국기|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약속 계획은 [[1945년]] [[9월]]로 되어있으나, [[일본 제국]]이 [[8월 15일]]에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결말 ==
* {{국기|미국}}과 {{국기|소련}}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국기|도이칠란트|나치}}와 {{국기|일본 제국}}을 이긴 계기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로 각각 성장하는 [[냉전]]이 발생하였다. {{국기|미국}}은 [[서유럽]] 지역에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설치하고 반공주의를 퍼트렸으며, {{국기|소련}}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와 [[코민포름]]를 설치하여 서방국가의 반공주의 정책과 팽창 정책을 견제하며 비판하였다.
** [[소련]]이 점령한 {{국기|동독}}, {{국기|체코슬로바키아}}, {{국기|유고슬라비아}}, {{국기|불가리아}}, {{국기|헝가리}}, {{국기|폴란드}} 등은 처음에는 [[바르샤바 조약 기구]]에 가입하여 [[서유럽]]과 [[자유주의]]에 대해서 경계했었다. 기타로 {{국기|몽골}}도 [[사회주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가 [[1989년]]에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소련]]이 무너지고 {{국기|러시아}}로 되돌아오자, [[동유럽]] 국가들과 [[몽골]]은 모두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유주의]]로 돌아섰다. 이어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했다.
** 그런데, {{국기|유고슬라비아}}는 [[사회주의]]를 포기했으나 이후 {{국기|슬로베니아}}, {{국기|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세르비아}}, {{국기|크로아티아}}, {{국기|몬테네그로}}, {{국기|마케도니아}} 등으로 크게 분열되었다.
** 추가로 {{국기|체코슬로바키아}} 역시 분열을 피하지 못했으며, [[소련의 붕괴]] 이후 {{국기|체코}}와 {{국기|슬로바키아}}로 영구 분열이 되고 말았다.
** 스스로 [[소련의 붕괴]]로 인해 무너졌던 {{국기|러시아}} 역시 15개국으로 분열된 채로 [[자유주의]]로 돌아섰다.
* {{국기|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에는 승리했지만 [[도이칠란트]]가 [[런던]]을 비롯해 [[영국]] 내부를 많이 폭격하여 쇠퇴의 길을 걸어야 했고, 결국 이렇게 [[영국]]이 국내 신경에 많이 써야 했기 때문에 식민지였던 {{국기|인도}}를 [[1947년]] [[8월 15일]]에 독립시켜야 했다. 같은 해 영국 자치령이었던 {{국기|호주}}와 {{국기|뉴질랜드}}도 잇따라 독립하였다.
* 반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국기|프랑스}}와 {{국기|네덜란드}} 등은 다시 원래의 식민지를 손에 얻고 싶었다. 그러는 바람에 겨우 [[일본 제국]]에게서 벗어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네덜란드령 동인도]] 등은 다시 최종적으로 승리한 [[프랑스]]와 [[네덜란드]] 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에 [[베트남]]의 [[호치민]]과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가 독립 전쟁을 일으켜서 [[1949년]]에 {{국기|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국기|인도네시아}}로 독립하였다. 베트남의 공산주의 지도자인 [[호치민]]은 [[베트남]] 북위 17도 북쪽만 독립시켰다. 한편, 남쪽은 그대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유지했다가 [[1955년]]에 [[미국]]에게 이양된 후, [[응오딘지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국기|베트남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이후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 끝내 [[1975년]]에 사이공이 함락을 끝으로 {{국기|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국기|미국}}과 {{국기|베트남 공화국}}을 상대로 승리하며 베트남을 통일하였다.
* {{국기|소련}}이 [[소련 대일전 참전]]을 통해서 [[한반도]]까지 내려오자, [[일본령 조선]]의 [[조선총독부]]도 당황했다. 이유는 적어도 [[서울]]은 [[소련]]이 점령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8월 15일]]에 당장 [[여운형]]에게 이양하여 죽음을 면하려 했다. [[여운형]]은 이 틈을 타서 [[안재홍]]과 상담하면서 [[8월 15일]] 오후 4시 30분에 {{국기|조선}} 최초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ref>[https://www.youtube.com/watch?v=XLmCEZrLXks&t=1579s 생생한 증언과 영상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1945년 8월 15일 그날의 기억 | 광복 60년 특별기획 (KBS 050809 방송)] 2021.8.9 </ref>, 이어 곧바로 [[8월 16일]] 아침 9시에 [[서대문형무소]]에 있는 정치범들을 다 석방시킨 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때, [[소련]]이 [[서울역]]에 온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에 [[일본령 조선]]에 머물러 있는 [[일본]]인들도 침묵했다. 심지어 일본인들 가운데 얼른 [[일본]]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실은 {{국기|소련}}이 [[8월 16일]] 오후까지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고, [[8월 18일]]에 비로소 [[청진 전투]]가 끝났다. 이후에도 [[소련]]은 한반도 이남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W0OD7EbbGOc 총독부의 최후의 25일] 2018.2.24</ref>. 실제로 [[38선]] 이남은 오히려 [[9월 9일]]에 [[인천]]에 상륙한 {{국기|미국|1912}}이 38선 남쪽을 점령하였다. [[조선총독부]]는 '''[[한반도]]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좋아한다'''고 {{국기|미국|1912}}에게 거짓말을 온갖 퍼뜨렸고 떠났으며, 이에 [[미국]]은 [[여운형]]의 [[조선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조선인민공화국]]을 당장 해임시켰고, 3년 간 [[남한]]에서 [[미군정기]]를 펼쳤다. 이렇게 [[미국]]이 점령한 [[남한]]에서는 [[1948년]]에 {{국기|대한민국}}이 건국되었고, [[소련]]이 점령한 [[북한]]에서는 [[북조선임시위원회]]와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거쳐 {{국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대립하고 있다.
* {{국기|중화민국}}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1945년]]에 [[중국 공산당]]과 [[국공 내전]]을 벌였다. 이 싸움에서 [[장개석]]이 패배하는 바람에 {{국기|타이완}}으로 망명했고,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이 [[1949년]]에 {{국기|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 [[1960년]]은 곧 [[아프리카의 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들이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서사하라]]만이 유일하게 [[모로코]]에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 [[라틴아메리카]] 중 {{국기|쿠바}}가 유일하게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전체적으로 [[라틴아메리카]]가 [[포퓰리즘]], 즉 사실상 [[사회주의]]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바람에 {{국기|베네수엘라}}가 가장 대표적으로 폐쇄적인 국가가 되고 말았고, 지금까지도 이르고 있어서 결국엔 [[남아메리카]]의 대부분 국가들은 제대로 잘 살지 못하는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 {{국기|그리스}}에서도 [[그리스 내전]]이 발생하여 [[공산당]]과 [[정부]]와 서로 [[내전]]을 치르기도 했었다.
* {{국기|도이칠란트}}의 경우는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의 4개국 분할 점령과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겹치면서 [[소련]]이 점령한 [[동독]]에서는 {{국기|독일 민주 공화국}}이, [[미국]]이 점령한 [[서독]]에서는 {{국기|독일 연방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비록 [[베를린 장벽]]도 생기고, [[바르샤바 조약 기구]]와 [[북대서양 조약 기구]]까지 서로 가입하는 일도 있었으나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의 재통일]]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지금까지도 [[자유주의]]를 주도로 하는 {{국기|독일}}이 정치적으로 다스리고 있다.
* {{국기|오스트리아}}도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1945년]] [[3월]]에 [[소련]]이 진입했고, [[4월]]에는 [[영국]]이 서쪽으로 진입하였다. 이 상태에서 [[5월 8일]] [[도이칠란트]]가 항복하였고 [[오스트리아]]도 [[도이칠란트]]처럼 일시 분단 상황을 맞이하였지만 10년 간이나 지속되었다([[오스트리아의 연합군 군정기]]). 이후, [[분단]] 위기를 벗어난 [[오스트리아]]는 [[스위스]]처럼 [[영세 중립국]]으로 독립하여 [[서유럽]]처럼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하지는 못했다.
* {{국기|일본 제국}}은 운좋게도 [[미국]]이 단독 점령을 하면서 [[냉전]] 위기에서는 벗어났다. 그리고 [[한국 전쟁]]을 계기로 많은 수출을 통해서 경제 발전을 이룩해갔다.
* {{국기|예멘}}의 경우는 원래 [[오스만 제국]]이 점령했던 피지배 국가였다, 그러다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이어 [[남예멘]]의 항구까지 탐내고 있었다. 그래서, {{국기|영국}}과 {{국기|오스만 제국}}이 서로 합의하여 [[남예멘]]은 [[영국]]이, [[북예멘]]은 [[오스만 제국]]이 [[식민지]]로 만들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이 승리하고, 반면 [[오스만 제국]]은 패배하자 [[북예멘]]은 일찍이 [[1918년]]에 {{국기|예멘 아랍 공화국}}으로 해방되었다. 반면 [[남예멘]]은 여전히 [[영국]]의 식민지로 속국이 되었고, 이후 예멘 민족해방전선까지 창설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냉전]] 시절 때에 [[소련]]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비로소 [[1967년]]에 {{국기|남예멘 인민 공화국}}으로 [[서아시아]]의 유일한 [[사회주의]]로 독립을 하였다. 하지만 이후, 분단국가였던 [[남예멘]]과 [[북예멘]]이 [[1970년]]대에 들어서 [[예멘 내전]]을 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990년]] [[5월]]에 [[예멘의 통일]]을 이룩하였고, 이는 [[독일의 재통일]]보다 4개월이 앞선 합의적 통일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합의 통일 이후 4년만에 [[남예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예멘 내전 (1994년)]]으로 인해 [[북예멘]]이 무력으로 재통일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예멘 내전]]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대한민국]]의 [[제주도]]까지 들어오는 예멘 난민이 발생하였다.
 
== 각주 ==
<references />
 
[[분류:제2차 세계 대전]]
[[분류:필리핀]]
[[분류:태평양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