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기 (1925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Leobroun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초안}}
이현기(李賢基, Hyun-kee Lee,1925.11.6. ~ )는 6.25 전후 혼란했던 시절 미국 유학을 통해 시애틀에 정착, 교민사회발전과 대한민국과의 시민외교증진에 기여한 자랑스런 한국인다.1925년2월11일 대한민국 황해도 신계군 미수면 사암리에서 부 李學奉, 모 李天吉의 3남3여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을 다니다 일제강점기 서당이 패쇄되어 간이학교2년, 보통학교4년을 졸업했다.16세 때 부인 李花女와 중매결혼한 후 서울로 내려왔다. 한영중학원 야간을 다니면서 영어를 배운 덕에 서울 동대문구 미군부대 청소부로 취직했다. 이후 장교클럽 바텐더, 장교 하우스보이로 근무하며 영창중고등학교 (현 성동고교)를 졸업(성동고1회 졸업생)했다. 졸업 후 미 대사관 통신과에 근무하다 국비유학생 시험을 거쳐 1955년 11월6일 부인과 아들 둘을 남겨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워싱턴 주립대, 시애틀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 졸업 후 킹카운티, 시애틀 시청에서 근무했다. 이후 영주권을 얻어 부인과 두 아들을 미국으로 초청, 10년만에 재회했다. 시애틀 한인회장(제4대, 5대), 민주평통 자문위 시애틀 지회장(1983), 서북미 협의회장(1996)을 역임하며 서북미 지역 한인회 발전에 기여했다. 1989년 10월 시애틀 시와 대전직할시가 자매결연을 맺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1996년에는 대전광역시와의 협조로 시애틀시 비콘 (Beacon)지역에 팔각정 (대전정으로 명명)을 건립하였다. 2014년 대전광역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되었으며 2019년 8월엔 미국 주류사회 및 한국사회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슬하에 두 아들과 손자 손녀가 있으며 최근 북한에 여동생 (87), 남동생((77)이 생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