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바 대학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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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년 [[베네치아 공화국]] 치세에 이르러, 파도바대학교는 절정의 황금기를 맞는다. 1400년부터 1600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대학은 국제적인 학문과 연구의 중심지로 거듭났고, 베네치아 공화국이 그 자유로운 학문과 연구를 보장하였기에 파도바는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베네치아 공화국의 [[:it:Serenissima|세레니시마]]라는 정치경제 시스템 아래서 그것이 가능하였다. 바로 이 황금기에 파도바대학교는 'Universa Universis Patavina Libertas(파도바의 자유, 그 누구에게나, 그리고 모두를 위해 )'라는 모토를 삼고, 유럽 과학의 중심지로서 발돋움하게 되었다. 1493년에 이르러, 법학교(Universitas Iuristarum)는 숫소휘장 아래 여관(Hospitium Bovis)으로 쓰이던 건물을 보다 넓히고 개조하여, [[:it:Palazzo del Bo|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오늘날의 본관 건물로 이전하였고, 중세 이후의 각 서유럽 국가들의 통치구조 재편을 위한 법리와 법률에 관한 과학적 연구와 방법론으로 명성을 높이게 된다.
 
1543년 내과 및 해부학장이었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해부학의 창시자로 [[:en:De humani corporis fabrica|인체조직에 대하여]](全 7권)을 통해서 이탈리아는 물론이거니와, 유럽 전역에 해부학에 대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동시에 유럽 도시마다 해부학 교실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545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it:orto botanico|식물원]]이 개장되었다(피사대학교의 식물원이 세계 최초로 1544년 개장식을 열었으나, 실제로는 개장되지 못했다고 해서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