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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시조 =
| 집성촌 =
| 인물 = [[엄수안]], [[엄유온]], [[귀인 엄씨]], [[엄흔 (1508년)|엄흔]], [[엄흥도]], [[엄황]], [[엄집]], [[엄숙]], [[엄석정]], [[엄진삼]], [[엄세영]], [[순헌황귀비]], [[엄준원]], [[엄주익 (1872년)|엄주익]], [[엄주명]], [[엄복동]], [[엄항섭]], [[엄상섭]], [[엄민영]], [[엄병학]], [[엄정주]], [[엄기표]], [[엄영달]], [[엄앵란]], [[엄삼탁]], [[엄낙용]], [[엄태항]], [[엄기영]], [[엄호성]], [[엄기학]], [[엄홍길]], [[엄현성]], [[엄용수]], [[엄태준]], [[엄기두]], [[엄정화]], [[엄태웅]], [[엄기준]], [[엄지원]], [[엄지인]], [[유아인|엄홍식]], [[엄현경]]
| 년도 = 2015
| 인구 = 140,206명
시조 엄림의(嚴林義)는 당 현종 때 파락사(波樂使)로서 신라에 동래하여 내성군(奈城郡)에 안주하였다고 한다.
 
고려조에 [[엄수안]](嚴守安)이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에 이르렀다.이르렀고,<ref>[http://db.history.go.kr/id/kr_106_0010_0170 《고려사》 권106, 열전19]</ref> [[엄유온]]엄공근(嚴有溫公瑾)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서 좌군동지총제판전의시사(左軍同知摠制判典儀寺事) 역임하였고, 그의 증손녀가 성종의 후궁인 [[귀인 엄씨]]이다. 영월 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0명을 배출하였다. [[엄집]]보문각제학(嚴緝寶文閣提學)이 숙종 때 [[우참찬]]에 이르렀다역임하였다.
 
11세 [[엄유온]](嚴有溫)이 조선의 개국공신으로서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역임하였고, 그의 증손녀가 성종의 후궁인 [[귀인 엄씨]]이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0명을 배출하였다. 16세 [[엄흔 (1508년)|엄흔]](嚴昕)이 중종 때 홍문관전한(典翰)을 지냈고, 엄흔의 현손인 [[엄집]](嚴緝)은 숙종 때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렀다. [[엄집]]의 손자 [[엄숙]](嚴璹)이 영조 때 [[대사헌]](大司憲)에 올랐고, 엄숙의 손자 [[엄도]](嚴燾)는 순조 때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였다. 25세 [[엄석정]](嚴錫鼎)은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냈다. [[엄진삼]](嚴鎭三)의 딸이 고종 후궁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가 되었고, 엄귀비의 아들이 황태자가 된 [[영친왕]](英親王)이다.
 
== 분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