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이승만#대일배상요구와 영토 환수의 노력 (1948~1949) 참고를 생성함.
5번째 줄:
흔히 근거로 들어지는 사료로는 크게 [[391년]] [[광개토왕릉비]] 신묘년 기사, 《[[일본서기]]》에 [[진구 황후]] 편에 [[신라]]와 [[백제]]가 조공을 바쳤다는 내용의 기사, [[백제]]의 [[칠지도]] 명문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8세기]]의 역사서 《[[일본서기]]》에 근거하여 임나일본부의 실재 여부나 그 기능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많은 이견이 있다.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해 임나일본부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음을 밝히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한일 양국 역사학자 "임나일본부는 없었다"|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592062_5780.html|저자=여홍규 기자|출판사=[[문화방송]]|날짜=2010-03-23}}{{깨진 링크|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592062_5780.html }}</ref>
{{참고|이승만#대일배상요구와 영토 환수의 노력 (1948~1949)}}
다만 일본의 일부 역사 교과서에는 임나일본부설을 긍정하는 내용이 그대로 실려 공식적으로 폐기된 학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일본이 고대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說은 거짓말”|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32554731}}</ref>
 
== 관련 사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