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나라자동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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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aenara Motors logo.svg|섬네일|오른쪽|새나라자동차 로고]]
[[파일:Datsun Bluebird (310) 001.JPG|섬네일|오른쪽|새나라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생산된 닛산 블루버드]]
'''새나라 자동차'''는 [[1962년]] [[8월]] 경기도 부평(현재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재설립된 자동차회사였다자동차 회사였다. 현재 [[한국GM한국지엠]]의 전신이다전신 중 하나다. 설립당시 연산 6천대의6,000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세우고 그 해 11월부터 61년식1961년식 [[닛산 자동차|닛산]]의 [[닛산 블루버드|블루버드]] P301형을 SKD(Semi-Knock-Down)부품수입방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ref>{{웹 인용 |url=http://myhome.shinbiro.com/~dwcij/index.htm# |제목="자동차 박물관 - (한국, 1962년 새나라자동차)." 최인정의 자동차 박물관. 2009년 4월 30일 확인. |확인날짜=2009-04-30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422045640/http://myhome.shinbiro.com/~dwcij/index.htm# |보존날짜=2009-04-22 |url-status=dead }}</ref> 블루버드는 ''새나라자동차''라는 이름으로 [[1962년]] [[11월]]부터 [[1963년]] [[5월]]까지 2,700여대를 조립판매했다.
 
== 역사 ==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정부는 국가재건 방안의 하나로 ''자동차공업 보호육성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당시 해외자본의 국내투자라는 명목으로 재일교포 박노정에게 새나라 자동차의새나라자동차의 설립을 허가했다. 옛 국산자동차 공장을 부지로 해서<ref>1937년 국산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이스즈자동차가[[이스즈 자동차|이스즈]]가 부평에 건설했던 공장으로, 일본군의 군용차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공장이었으며 [[한국6.25 전쟁]] 시기까지도 존재하다가 [[1954년]]에 해체되었다. 전영선, 『고종, 캐딜락을 타다』, 인물과 사상사, 2010년, 207쪽</ref> 공사가 착공되기도 전에 정부는 [[닛산 자동차|닛산]]의 [[닛산 블루버드|블루버드]] 완제품 400여대를 면세로 수입할 수 있게 허가했다. 400대중400대 중 150대는 외국인 관광용, 250대는 일반 관광용으로 허가했으나, [[1963년]] [[5월]] 아시아 영화제를 핑계로 생산차량을 일반택시로 용도변경해놓고는용도변경해 놓고는 자금을 들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는 국내 자동차업계에 엄청난 실망을 불러왔고, 국산 [[국제차량제작 시발|시발택시]]와 새나라자동차의 자동차를 소유했던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됐다. 현재 [[대한민국]]에 운행 가능한 차량은 물론, 잔존하는 차체는 전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와서 [[1964년]] [[제3공화국]] 국회에서 재일교포 박노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제기했으나, 이 시점에서 박노정은 이미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에 조사는 무산되었다.
 
[[5·16 군사 정변]] 이후 정부는 국가재건 방안의 하나로 ''자동차공업 보호육성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당시 해외자본의 국내투자라는 명목으로 재일교포 박노정에게 새나라 자동차의 설립을 허가했다. 옛 국산자동차 공장을 부지로 해서<ref>1937년 국산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이스즈자동차가 부평에 건설했던 공장으로, 일본군의 군용차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공장이었으며 [[한국 전쟁]]시기까지도 존재하다가 1954년 해체되었다. 전영선, 『고종, 캐딜락을 타다』, 인물과 사상사, 2010년, 207쪽</ref> 공사가 착공되기도 전에 정부는 [[닛산]]의 [[닛산 블루버드|블루버드]] 완제품 400여대를 면세로 수입할 수 있게 허가했다. 400대중 150대는 외국인 관광용, 250대는 일반 관광용으로 허가했으나, [[1963년]] [[5월]] 아시아 영화제를 핑계로 생산차량을 일반택시로 용도변경해놓고는 자금을 들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는 국내 자동차업계에 엄청난 실망을 불러왔고, 국산 [[국제차량제작 시발|시발택시]]와 새나라자동차의 자동차를 소유했던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됐다. 현재 [[대한민국]]에 운행 가능한 차량은 물론, 잔존하는 차체는 전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와서 [[1964년]] [[제3공화국]] 국회에서 재일교포 박노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제기했으나, 이 시점에서 박노정은 이미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에 조사는 무산되었다.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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