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게 겐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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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5 = 도쿄도청사 제일일본청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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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단게는 잡지 《현대건축》에 논문 〈미켈란젤로 송 -르 코르뷔지에론의 서설로서-〉(ミケランジェロ頌-ル・コルビュジエ論への序説として-)를 발표하고 이어 1941년 [[마에카와 구니오]]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기시 기념체육회관]]의 설계를 담당하였으나, 그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1942년 대동아건설기념 영조계획경기에서대동아건설기념영조계획경기에서,<ref group="注">대동아건설기념영조계획을 잘못하여 '조영'으로 표기하는 법도 많지만, 정확하게는 '영조'이다. 대동아건설기념영조계획의 구상은 [http://artstudy.exblog.jp/3582481/ 20世紀日本建築・美術の名品はどこにある?「第4回レクチャーレポート1」]으로. 또한 대동아건설기념영조계획안과 히로시마 계획과의 비교는 이곳을 참조키 바란다. [http://blogs.yahoo.co.jp/ekusnnok/22516404.html 空のたね「広島平和記念公園デザインの起源 〈その2・補足〉」]. [http://wave.ap.teacup.com/yumoku/3.html YuMoKu REPORT 「広島ピースセンター1」].</ref> 또 1943년 재[[방콕|반곡]] 일본문화회관 설계경기에서 잇따라 1위를 따낸 일에서였다. 특히나 대동아건설 기념영조물 경기에서의대동아건설기념영조물경기에서의 단조의 안 〈대동아도로를 중축으로 하는 기념영조계획 -주로서 대동아건설충령신역계획-〉(大東亜道路を主軸としたる記念営造計画-主として大東亜建設忠霊神域計画-)은 휴먼 스케일을 아득히 뛰어넘은 플랜으로 [[요코야마 다이칸]]풍의 일본화를 연상시키는 그 퍼스펙티브(투시도)로 하여 후세까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다만 본래 건축학회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수수한 현상행사였으므로 도저히 실시안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ref>[[단게 겐조#井上章一2006|井上章一2006]]、289-292頁。</ref>
 
1941년 도쿄제국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다카야마 에이카]]의 연구실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