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이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89 바이트 제거됨 ,  2개월 전
잔글
잔글 (→‎기원)
 
 
== 건축 ==
=== 초기의초기 건설 ===
[[파일:Todaiji shoro.jpg|섬네일|왼쪽|220px|종루]]
743년에 쇼무 천황은 일본 곳곳에 새로운 사원을 설립하라는 칙령을 반포했다. 이것은 부처의 힘을 빌려 국가를 재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승려 [[교키]]는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기부를 요청했다. 도다이지의도다이지 기록에 따르면, 도다이지의도다이지 불상과 대불전을 건설하는데 260만 명 이상이 쌀, 나무, 금속, 혹은 노동력 등을 공양하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35만 명이 넘는 인력이인력을 불상을불상 만드는 데에 투입되었다는투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16m 높이의높이 불상은 3년 넘게 8번의8번 주조를 통해 만들어졌고만들었고, 머리와 목은 별도로 주조되어주조해서 나중에 하나로 합쳤다. 불상의불상 제작은 [[시가라키]]라는 이름의 마을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시작했는데, 몇 번의 화재와 지진로지진으로 인해말미암아 잠시동안잠시 제작이제작을 중단되었다가중단했다가 745년에 나라에서 다시 작업을 재개하여 751년에 마침내 완성되었다완성했다. 1년 후인 752년에 불상의 완성을 기념하는 의식에 1만 명에 달하는 승려와 4천 명에 달하는 무희들이무희가 참석하였다고 한다. .당시 인도에서 건너온 한 승려가 직접 이 의식을 담당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정부가 이 불상을 만들기 위해 일본 전역에 있던 청동을 모두 끌어모아 써버렸기 때문에, 일본의일본 경제는 파탄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불상에 쓰인 금은 모두 수입해 온 것이다. 48개에 달하는 옻칠된옻칠한 계피나무 기둥들이기둥을 대불전의대불전 기와지붕을기와지붕 떠받치기 위해떠받치는데 사용되었다고사용했다고 한다.
[[파일:Tōdai-ji diorama.jpg|섬네일|도다이지의 초기 모습]]
도다이지의도다이지 초기 모습을 그려놓은그린 기록은 그 수가 극히 적긴 하지만적지만, 몇몇이 지금까지 남아있어 도다이지의도다이지 옛 모습을 추측해 볼추측할 수 있게 한다. 초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건축물들은,건축물은 2개의2개 불탑, 도서관, 강의실, 승려들의승려 거주 건물들이 있다. 도다이지는 단순히 부처를 모시고 기도를 올리는 공간이 아니었고, 고등 교육 기관의기관 역할도 동시에 수행했기에 이와 같은 건물들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도다이지의도다이지 원래 모습을 추측해 볼추측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곳에 살았던 승려들이승려가 남긴 자료들과자료와 편지, 기록들에서기록에서 나온 것이다.
 
원래의원래 사원에는 100m가 넘는 두 개의 불탑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들이었다건축물이었다. 이 두 탑은 각각 대불전의대불전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추정한다. 이 탑은 4개의4개 문이 있는 담장으로 둘러싸여져둘러싸여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이들은 모두 지진에 의해지진으로 파괴되어 찾아 볼 수 없다. [[쇼소인]]은 도다이지의도다이지 창고로 현재 덴표 시대의시대 많은 미술 공예품들을공예품을 소장하고 있다.
 
=== 나라 시대 이후의 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