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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http://www.yjh.or.kr 유재하음악장학회]
|나이=|항년 나이25세)}}
'''유재하'''(柳在夏, 1962년 6월 6일 ~ 1987년 11월 1일)는 대[[대한민국|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유재하'''(柳在夏, [[1962년]] [[6월 6일]] ~ [[1987년]] [[11월 1일]])는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멀티플레이어 (음악)|멀티플레이어]]였다. 1962년 태어난 유재하는 [[한양대학교]] 작곡과에 재학하면서 19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발탁되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로 활동, 1986년 김현식 3집의 〈가리워진 길〉이란 곡을 작곡하여 [[김현식]]의 초기 명반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다. 이듬해 1987년에는 자신의 1집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하고, 같은 해 11월 1일 25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02355&PAGE_CD=|제목=유재하 vs 유희열, 미래의 소리에 귀기울여라|성=|이름=|날짜=2008-05-19|뉴스=오마이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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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장의 앨범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어도 유재하의 음악은 당대는 물론 유재하가요제가 말해주듯 지금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았다.<ref>{{웹 인용|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1840&bigcateidx=19&subcateidx=41&view_tp=1|제목=만약 유재하가 살아있다면|성=임진모|이름=|날짜=2010년 10월|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220093201/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1840&bigcateidx=19&subcateidx=41&view_tp=1|보존날짜=2017-02-20|url-status=dead}}</ref> 현재는 그를 기리는 유재하 음악 장학회가 설립되어 있으며, 재정적 문제로 열리지 못했던 2005년을 제외하고 1989년부터 매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ref name="조이뉴스061101" />▼
▲단 한 장의 앨범을 남기고 세상을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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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 시절 2학년 때인
대학 졸업 후 군복무를
{{quote box|align=left|width=25em|quote=86년 겨울, 재하가 레코드를 내겠다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준비해 온 악보를 내미는데 거기에는 작사, 작곡뿐 아니라 편곡까지도 완벽하게 되어 있더군요. 다른 사람의 손이 갈 여지가 없었습니다. 일사천리로 레코딩이 진행되었죠. 참 재능있는 친구구나 하며 기대를 크게 걸었습니다.<ref name=":10" />|출처=―조원익|halign=center|bgcolor=#FFFFF0|quoted=true}}
《사랑하기 때문에》은 당초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가 되었으며, 발매 초기에도 평론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얻지 못했다.<ref>[http://ruliweb.daum.net/news/view/MD20071108105710051.daum 故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여주인공은 '플루트 김'] 《마이데일리》, [[2008년]] [[11월 8일]] 작성</ref> 클래식 음악의 화성학과 갖가지 악기들의 음색을 터득한 유재하는 기존의 대중 가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음악 관계자들조차도 '노래가 이상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ref>[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8231010521&code=900313 유재하, 한국 ‘대중음악의 自主’ 를 이루다.] 《경향신문》, 2007년 8월 23일 작성</ref> [[문화방송|MBC]] 방송 심의를 위해 PD들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거의 모든 노래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정박자가 아닌 엇박자로 시작되는데 PD들은 이를 듣고 그를 박자도 못맞추는 가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1&aid=0000048806|제목=다시 듣고싶다…그들의 노래를|성=|이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한국방송공사|KBS]]의 《[[젊음의 행진]]》에서 한 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게 유재하의 유일한 TV 출연이었다.<ref name=":6" /> 게다가 일본의 야마다 가요제에 출품한 앨범의 수록곡 〈지난날〉은 예선에서 탈락, 그를 한층 더 낙담으로 몰아갔다.<ref name=":11">{{뉴스 인용|url=http://www.vop.co.kr/A00000089896.html|제목=생전의 불운, 사후의 영광|성=임진모|이름=|날짜=2007-10-30|뉴스=민중의소리|출판사=|확인날짜=}}</ref> 크게 상심한 유재하는 국내 음악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조 섞인 상실감과 자괴감을 드러냈다.
=== 죽음 ===
=== 사후 ===
▲《사랑하기 때문에》은 당초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가 되었으며, 발매 초기에도 평론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얻지 못했다.<ref>[http://ruliweb.daum.net/news/view/MD20071108105710051.daum 故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여주인공은 '플루트 김'] 《마이데일리》, [[2008년]] [[11월 8일]] 작성</ref> 클래식 음악의 화성학과 갖가지 악기들의 음색을 터득한 유재하는 기존의 대중 가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음악 관계자들조차도 '노래가 이상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ref>[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8231010521&code=900313 유재하, 한국 ‘대중음악의 自主’ 를 이루다.] 《경향신문》, 2007년 8월 23일 작성</ref> [[문화방송|MBC]] 방송 심의를 위해 PD들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거의 모든 노래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정박자가 아닌 엇박자로 시작되는데 PD들은 이를 듣고 그를 박자도 못맞추는 가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1&aid=0000048806|제목=다시 듣고싶다…그들의 노래를|성=|이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한국방송공사|KBS]]의 《[[젊음의 행진]]》에서 한 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게 유재하의 유일한 TV 출연이었다.<ref name=":6" /> 게다가 일본의 야마다 가요제에 출품한 앨범의 수록곡 〈지난날〉은 예선에서 탈락, 그를 한층 더 낙담으로 몰아갔다.<ref name=":11">{{뉴스 인용|url=http://www.vop.co.kr/A00000089896.html|제목=생전의 불운, 사후의 영광|성=임진모|이름=|날짜=2007-10-30|뉴스=민중의소리|출판사=|확인날짜=}}</ref> 크게 상심한 유재하는 국내 음악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조 섞인 상실감과 자괴감을 드러냈다. "제 노래 들어보셨어요? 우습죠?"<ref>{{웹 인용|url=http://www.mnet.com/special/5360|제목=[레전드 100人] 유재하, 대한민국 발라드의 기준이 되다.|성=소승근|이름=|날짜=|웹사이트=Mnet|출판사=|arxiv=|보존url=http://archive.is/KrxS6|보존날짜=2017-03-01|확인날짜=}}</ref> 이 무명의 시간은 여름이 되어 〈지난날〉이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끝이 난다. 부담 없는 목소리는 순식간에 모든 불운의 상황을 반전시켰고, 음반은 호조를 띠기 시작했다.<ref name=":7" /> 유재하의 음반을 발매한 서울음반의 이재석은 유재하를 '순한 바람'이라고 회고하였다. "레코드가 나온 후 길에서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자신의 작품에 대해 몹시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때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이었지만 그는 벌써 다음 앨범을 계획하며 다음에는 좀 더 나은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하더군요."<ref name=":10" />
유재하의 가족은 운전자 성낙헌의 아버지 선순용과 한도콜택시 등을 상대로 4억 1,600여 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1988년 8월 3일 서울민사지법 합의 15부에서는 "승용차를 모는 친구가 술에 취한 것을 알고도 같이 타고 가다 사고가 났으면 피해자도 50%의 과실이 있다"며 "피고 성씨는 유씨 가족에게 4,460여 만원을 지급하면 된다"고 판결했다.<ref name=":5" />
▲[[1987년]] [[10월 31일]] 오후 5시 30분경 어둑해질 즈음이었다. "형 잠시 나갔다 올게. 가수 됐다고 동창이 찾아왔는데 빨리 해치우고 올게." 평소에도 다정다감했던 동생은 수술을 받고서 칩거하던 형의 볼에 뽀뽀하고 문밖을 나섰다.<ref name=":4" /> 이날 동창회에서 1집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던 그는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은 친구 성낙헌의 차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6103111005086147&outlink=1|제목=29년 전 오늘… '음악천재' 유재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다|성=이재윤|이름=|날짜=2016-11-01|뉴스=머니투데이|출판사=|확인날짜=}}</ref> 1987년 11월 1일 새벽 3시 27분경, 유재하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강변북로]] 부근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마주오던 한도콜택시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로 인해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f>휴지통 《동아일보》, 1988년 8월 3일</ref><ref name=":5">{{웹 인용|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80400289108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8-04&officeId=00028&pageNo=8&printNo=70&publishType=00010|제목="음주운전 교통사고 동승자도 50% 책임" "안전운행 주의 환기시킬 의무 지녀"|성=한겨레|이름=|날짜=1988-08-04|웹사이트=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출판사=한겨레|확인날짜=}}</ref> 그의 주검은 경기도 용인 천주교 용인 공원묘지에 묻혔다.<ref name=":4" /> 유재하 무덤 앞에는 노래 〈사랑하기 때문에〉의 악보 조각상이 있는데, 그 악보 중 2개 음표가 틀렸다.<ref name=":8" />
2004년 7월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 영화 제작사는 인터넷에서 '다시 살려내고 싶은 연예인'이라는 설문 조사를 벌였고 유재하는 5위에 올랐다.<ref name=":0" />
▲친형은 그의 미발표곡은 남아있지 않으며, "동생이 대략 5년간 11곡을 썼다"고 밝혔다.<ref name=":4" /> 사망 후 일반인들과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 유재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남과 동시에 유재하의 음악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ref name=":3">{{웹 인용|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16365&bigcateidx=1&subcateidx=3&view_tp=1|제목=사랑하기 때문에|성=임진모|이름=|날짜=|웹사이트=이즘|출판사=|확인날짜=}}</ref> 3년 후 같은 날 김현식이 세상을 떠나자 연예계에는 "먼저 간 유재하가 술친구가 그리워 그를 데리고 갔다"는 호사가들의 이야기가 나돌았다. 여기에 더해 유독 11월에 연예계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지면서 '11월 괴담설'로까지 부풀려졌다.<ref name=":13">{{웹 인용|ur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88739&cid=58276&categoryId=58283|제목=가요앨범 리뷰 - 사랑하기 때문에|성=최규성|이름=|날짜=|웹사이트=네이버|출판사=한국대중가요연구소|확인날짜=}}</ref> 유재하의 가족은 운전자 성낙헌의 아버지 선순용과 한도콜택시 등을 상대로 4억 1,600여 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1988년 8월 3일 서울민사지법 합의 15부에서는 "승용차를 모는 친구가 술에 취한 것을 알고도 같이 타고 가다 사고가 났으면 피해자도 50%의 과실이 있다"며 "피고 성씨는 유씨 가족에게 4,460여 만원을 지급하면 된다"고 판결했다.<ref name=":5" /> 2004년 7월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 영화 제작사는 인터넷에서 '다시 살려내고 싶은 연예인'이라는 설문 조사를 벌였고 유재하는 5위에 올랐다.<ref name=":0" />
== 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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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작곡과에서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유재하는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첼로]] 등의 악기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8231010521&code=900313|제목=[커버스토리]유재하, 한국 ‘대중음악의 自主’ 를 이루다|성=|이름=|날짜=|뉴스=경향신문|출판사=|확인날짜=}}</ref>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유재하와 함께 활약하고 그의 추모 공연에서도 피아노를 연주한 [[박성식]]은 유재하의 연주를 이렇게 평가했다. "연주자로서의 유재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감정이 잘 살아 있어 듣는 사람에게 크게 어필한다는 게 특징이었죠.<ref name=":10" />{{quote box|align=right|width=30em|quote=재하의 천재성에 중요한 요소는 오케스트레이션이었다. 오케스트라의 화법이 분명 달랐다. 음악을 언어라고 하면 단어의 구사가 달랐고 그 언어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하의 오케스트라는 [[냇 킹 콜]], [[웨스 몽고메리]], 그리고 70년대 오케스트라를 연구했던 것이었는데 당시 우리는 그런 것들이 먼 이야기였는데 재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ref name=":6" />|출처=―[[김종진 (가수)|김종진]]|bgcolor=#FFFFF0|quoted=true}}
[[임진모]]는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 바이올린 첼로 기타를 마스터했으며 작사 작곡 솜씨도 뛰어났다. 악기에 능통한 덕분이었지만 편곡까지 도맡았다는 점은 당시 상황으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고
작곡과 학생들에게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직접 작곡한 작품을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대학 2학년 쯤 되었을 때의 유재하가 작곡한 악보를 본 교수는 그것을 집어던지며 '자네가 아무리 바빠도 모차르트를 배껴오면 어떡하는가'라고 그를 질책했다. 그것은 유재하의 작곡이 화성이나 악절진행에서 모차르트와 비슷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훌륭한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ref name=":10" /> 삼선 중학교 시절 그는 브레드, 퀸, 비틀즈, 피터 프램프톤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고 전해진다.<ref name=":7" /> 김종진은 그가 "라이오넬 리치, 필 콜린스, 엘튼 존의 노래를 즐겨 불렀고 종종 다른 가수들에게 줬던 본인의 노래들도 부르며 놀곤 했다."고 말했다.<ref name=":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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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는 애주가였다. 바로 위의 친형은 "선친이 약주를 좋아하셨는데 집안 내력인지 제가 동생에게 '술을 366일 먹느냐'고 잔소리를 하곤 했죠. 재하는 싸고 독한 40도짜리 쥬니버 드라이진을 좋아했어요. 전 한잔도 못 하겠던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1시간 반이면 700ml짜리 한 병을 다 비웠죠. 그것도 '스트레이트'로요."라고 회고하였다.<ref name=":4" /> 김광민 또한 "유재하는 술을 굉장히 좋아했다. 술 마시다가 돈이 떨어지면 집에서 돈을 가져와 더 마실 정도였다"고 말했다.<ref name=":9">{{뉴스 인용|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622816|제목='라스' 김광민 부유했던 유재하 언급 '집안 집기 다 외제품'|성=|이름=|날짜=2014-10-30|뉴스=일간스포츠|출판사=|확인날짜=}}</ref>
장기호는 "아버님이 탄광을 하신 것으로 안다. 재하의 외모는 중산층 아래쪽 이미지인데 집을 가보면 굉장히 부유했다"며 "약간 빈티지다. 재하 집에 있던 모든 집기는 외제품이였다."라고 당시 부유했던 유재하의 집안을 회상했다.<ref name=":9" /> 동아기획의 대표 김영은 유재하가 "요즘말로 하면 개그맨"이었으며 "또 미남은 아니었지만 바람둥이였다."고 말했다.<ref name=":12">{{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131381|제목=김영 "최고 음악인은 김현식"|성=이창호|이름=|날짜=2005-11-18|뉴스=세계일보|출판사=|확인날짜=}}</ref> 김종진은 "재하는 무대 위에서 '꺅' '오빠' 소리 듣는 걸 좋아했던 친구였다"고 기억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entertainment/2013/10/31/1101000000AKR20131031052300005.HTML|제목=KBS 쿨FM, 故 유재하 라디오 출연 육성 공개|성=|이름=|날짜=2013-10-31|뉴스=연합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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