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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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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겨울 베이시스트 조원익을 찾아가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ref name=":7" /> 1987년 8월 자신의 데뷔 앨범이자 유작 앨범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를 [[서울음반]]을 통해 발표한다. 음반이 나온 후 조원익은 유재하로부터 매니저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매니저로서의 자질이 없었다고 여겼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여 얼마 동안은 함께 일을 보러 다녔다. 이렇게 잠깐 매니저를 맡은 조원익은 그의 사후 처리 문제까지 맡았으며 결국에는 추모공연까지 기획하게 된다.<ref name=":10" />
 
《사랑하기 때문에》은 당초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가 되었으며, 발매 초기에도 평론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얻지 못했다.<ref>[http://ruliweb.daum.net/news/view/MD20071108105710051.daum 故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여주인공은 '플루트 김'] 《마이데일리》, [[2008년]] [[11월 8일]] 작성</ref> 클래식 음악의 화성학과 갖가지 악기들의 음색을 터득한 유재하는 기존의 대중 가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음악 관계자들조차도 '노래가 이상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ref>[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8231010521&code=900313 유재하, 한국 ‘대중음악의 自主’ 를 이루다.] 《경향신문》, 2007년 8월 23일 작성</ref> [[문화방송|MBC]] 방송 심의를 위해 PD들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거의 모든 노래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정박자가 아닌 엇박자로 시작되는데 PD들은 이를 듣고 그를 박자도 못맞추는 가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1&aid=0000048806|제목=다시 듣고싶다…그들의 노래를|성=|이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한국방송공사|KBS]]의 《[[젊음의 행진]]》에서 한 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게 유재하의 유일한 TV 출연이었다.<ref name=":6" /> 게다가 일본의 야마다 가요제에 출품한 앨범의 수록곡 〈지난날〉은 예선에서 탈락, 그를 한층 더 낙담으로 몰아갔다.<ref name=":11">{{뉴스 인용|url=http://www.vop.co.kr/A00000089896.html|제목=생전의 불운, 사후의 영광|성=임진모|이름=|날짜=2007-10-30|뉴스=민중의소리|출판사=|확인날짜=}}</ref> 크게 상심한 유재하는 국내 음악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조 섞인 상실감과 자괴감을 드러냈다.<ref>{{웹 인용|url=http://www.mnet.com/special/5360|제목=[레전드 100人] 유재하, 대한민국 발라드의 기준이 되다.|성=소승근|이름=|날짜=|웹사이트=Mnet|출판사=|arxiv=|보존url=http://archive.is/KrxS6|보존날짜=2017-03-01|확인날짜=}}</ref> 이 무명의 시간은 여름이 되어 〈지난날〉이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끝이 났다. 부담 없는 목소리는 순식간에 모든 불운의 상황을 반전시켰고, 음반은 호조를 띠기 시작했다.<ref name=":7" /> 유재하의 음반을 발매한 서울음반의 이재석은 말년의 유재하유재하를 이렇게 회고했다. "레코드가 나온 후 길에서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자신의 작품에 대해 몹시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때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이었지만 그는 벌써 다음 앨범을 계획하며 다음에는 좀 더 나은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하더군요."<ref name=":10" />
 
=== 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