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 (시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ShineyMoon (토론 | 기여) 180.81.162.110(토론)의 판 30717337으로 되돌림 (TW) |
편집 요약 없음 태그: 되돌려진 기여 |
||
1번째 줄:
{{인물 정보
|이름=
|원래 이름= 못생金得臣
|출생일= [[1604년]] [[12월 8일]]/[[음력 10월 18일]]
|사망일= [[
|거주지= [[조선]] [[한성부]]
|경력 = 문관 겸 시문학가
13번째 줄:
}}
'''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았으나 1642년
그는 10세에 글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였지만, 몇시간 전 공부한 것을 다 잊는 등 학습 내용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여 공부가 많이 힘들었다. 그의 아버지 김치는 김득신에게 공부를 멈추라는 유언을 남긴 후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밥을 먹을 때도, 보행할 때도 계속 책을 놓지않으며 책 한 권은 11만 3천여 번이나 읽고 다른 책들은 2만여 번 읽는 등 엄청난 노력으로 능숙해져 59세의 나이로 성균관에 합격했다.
26번째 줄:
== 전기 자료 ==
* 이현석,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안풍군 김 공 묘갈명〉(《백곡집》, 〈부록〉에 수록됨; 현존하는 《
* 김가원, 〈행장초〉(위와 같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