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세 다케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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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계급 = [[File:Imperial Japan-Navy-OF-4-collar.svg|30px]] [[해군 중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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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세 다케오'''(広瀬 武夫, {{구자체|廣瀨武夫}}. 1868년 7월 16일(게이오 4년 5월 27일) - 1904년(메이지 37년) 3월 27일)는 일본의 [[해군 군인]], [[유도가]]이다. [[일로전쟁]]에서의 에피소드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전전에는 [[군신]]으로 신격화되었다. 형인 [[히로세 가쓰히코]] 역시 해군 군인이다.
 
== 경력 ==
[[오카번]]사 히로세 도모노조의 차남으로서 [[분고국]] [[다케다]](이후의 [[오이타현]] [[다케다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모친과 사별하여 조모의 슬하에서 자라났다. [[서남전쟁]]으로 다케다의 자택은 소실되고 일가는 [[다카야마시]]로 전거하였다. 다카야마의 간쇼소학교(煥章小学校)를 졸업 후 소학교 교사에 임용, 1885년(메이지 18년) 퇴직하고 [[고교쿠샤 중학교·고등학교|고교쿠샤]]를 거쳐 해군병학교에 입학, 동시기에 [[강도관]]에서 [[유도]]를 배웠다. 1889년 졸업(15기). 입학 시 석차는 19번 졸업 시에는 80인 중 65번(49번이라는 설도 존재).
 
병학교 졸업 후 이듬해 1890년 2월까지 군함 '히에이'에 승선, 두 번에 걸쳐 원양항해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소위에 임관. 반년간은 측량함 '가이몬'의 갑판사관이 되어 연안의 측량, 경비에 종사하였다. 그 시기에 [[시즈오카현]] [[시미즈구|시미즈]]에 기항하여 [[시미즈노 시로초]]의 지우(知遇)를 받았다.
 
1894년 [[일청전쟁]]에 종군하여 1895년에 대위로 승진. 1897년 러시아에 유학하여 러시아어를 배우고 귀족사회와 교우한다. [[여순항]] 등의 군사시설도 견학했다. 그 후 러시아 주재무관이 되어 1900년에 소좌로 승진. 1902년 귀국한다. 러시아 주재중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던 [[구로노 요시부미]]의 부탁을 받아 후에 해군 소좌가 되는 요시부미의 이남 [[모리 덴조]]의 상담상대가 되어주어 각별히 보살피었다.
[[분류:1904년 사망]]
[[분류:1868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