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언어철학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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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존스의 음성학 연구를 한국어에 적용하여, 최초로 영어의 모음 사각도를 약간 변형시켜서 한국어 타원 모음도를 창안하였다. 음성학 강의를 통해서 국어 음성학에 추춧돌을 놓는 공헌을 하였으며 이론적으로 음성학 연구를 접근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사-비교 언언학적 방법론으로 우리말의 기원 및 [[향가]] 연구와 [[만주어]], 다구르어, [[몽골어]] 연구에까지 광범하고 다양한 언어학 논제들에 대해 여러 논문을 집필하였다.
 
광복 후 [[미군정]] 하에 《새한신문》을 발행하였다. 1946년 3월 연희 대학으로 복직해 영어음성학을 강의하였으며, 1947년부터 1948년 문과대학성 서리(한림원 원장)이란 보직을 맞아 일하였다. 1950년 1월 부터1월부터 1958년 서울 대학 언어학과 주임교수로 활동하였으며 1951년에는 전곡 전시 연합대학 교무처장을 역임하고 1952년에는 미국 [[코넬 대학교]] 교환교수로 초빙되었다.
 
1958년 12월 [[문교부]] 차관직에 임명되어 한글전용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한글간판 장려 정책을 널리 펼치었으나 [[4.19 혁명]]으로 인해서 차관직으로부터 물러나게 되었다. [[5.16 쿠테타]] 이후 정치적 격동기였던 1963년 [[김준연]] 선생의 추천으로 [[자유민주당]] 중앙 위원회 의장으로 잠시 정치계에서 활동을 하였다. 다시 학계로 돌아 가신 계기는 명지학원 유상근 박사의 초빙으로 [[명지대학]] 초대 대학원 원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1975년 명예박사학위를 동대학으로부터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