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요시시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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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요시시게'''({{lang|ja|宗義調}}, [[1532년]] ~ [[1589년]] 1월 28일)는, [[대마도]]의 [[슈고 다이묘]]로서 봉건영주가 된 사람·사람이며 전국 다이묘. 소(宗)씨의 제17대 당주.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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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몬(天門) 원년 (중종 27년-1532년), 제16대 당주인 [[소 하루야스]](宗晴康)의 아들로 태어났다. 텐몬 22년(1553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가의 제17대 당주가 되었다. 코우지(弘治)3년(명종 12년-1557년),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고 무역을 확대했다([[정미약조]]丁未条約).이 결과, 소씨 가문의 무역에 있어서 번영을 가져왔다.
 
에이로쿠(永禄) 2년(명종 14년-1559년), [[소 마사모리]](宗将盛)의 이복남동생 등에 의한 모반이 일어났지만, 요시시게는 이것을 진압해 소가의 사실상의 통일을 완수했다. 에이로쿠 9년(명종 30년-1566년) 8월, 상속자를 양자인 [[소 시게나오]](宗茂尚)에 양보해 은거했지만, 더욱더 실권을 장악했고, 게다가 시게나오가 요절했기 때문에, 그 남동생인 요시즈미(義純)를 다시 잇게 했지만, 그마저도 요절했기 때문에, 그 남동생인 [[소 요시토시]](宗義智)를 당주로서 후를 잇게 해 요시시게는 그 후견인으로서 정치의 실권을 더욱더더욱 단단히 잡았다.
 
덴쇼(天正) 15년(선조 20년-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규슈 정벌이 시작되면서, 5월에 상속자로 복귀해 다시 소가의 당주가 된다. 게다가 요시토시와 함께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에 참전을 했기에, [[대마도]]를 봉지로 받게 되었다.
 
그 후,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의해 조선과 교섭을 하게되는데하게 되는데, 히데요시는 요시시게에게 엉뚱하게도 1년 이내에 조선 국왕을 종속시키라는 교섭명령을 내리며, 조선에 출병한다고 하는 협박을 억눌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요시시게는 가신(家臣)인 [[유타니 야스히로]](柚谷康広)를 조선에 파견해 교섭에 임하게 해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을 회피하고 또한 조선과 화목하게 지내기 위해서 진력했지만, 덴쇼16년(선조 21년-1588년) 음력 12월 12일에 교섭과정중에 병사해 버렸다. 향년 57세였다. 그의 사후 양자인 소 요시토시가 이었다.
 
[[분류:1532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