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슈테트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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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부대는 7월 28일 아침에 도착하였다. 오스트리아군은 선두에 선 마차에 사격을 개시하였다. 프로이센 보병대대가 적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앞으로 진군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오스트리아 포병대의 공격으로 퇴각하였다. 프로이센군은 자신들이 있는 도로 쪽에서 포병대를 구성하여 사격을 시작했다. 프로이센군은 경사진 곳에 위치한 오스트리아군에게 공격을 하려 수차례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격퇴 당하였다. 전투는 5시간동안 계속되었으나 결국 프로이센군이 전장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라우돈은 휘하 병사들에게 모라브스키 베로운(Moravský Beroun)으로 퇴각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 퇴각작전은 쉽게 진행되었는데, 모젤에게는 오스트리아군을 추격할만한 충분한 기병 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라우돈은 프로이센군의 수송부대를 격멸시키지 못하고 퇴각했지만, 피해는 프로이센군부다 적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라우돈이 프로이센군의 진격을 늦춰 오스트리아군에게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어떤 역사학자들은 만약 프로이센군이 일부 흩어진 마차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올로모츠로 달려갔으면 보급 작전은 성공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모젤이 이끄는 수송부대가 공격당한 후 몇 시간 후에야 도착한 자이튼은 지스코비츠의 군대가 접근해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프로이센군은 흩어진 보급부대를 집결시키고 부서진 보급마차를 고치는데,고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7월 30일 아침에야 이동을 시작했다.
 
===돔마소프===
[[Image:Battle of Domstadtl memorial detail.jpg|right|thumb|독일어로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