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털링 다리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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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능한 전사이자 여전히 만만치 않은 수의 궁병대를 지휘하고 있는 서리 백작은 강의 남쪽에 남아있었고, 아직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병력의 대부분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전방으로 전열을 유지하고 있어서 스코틀랜드군은 승세를 타고 남쪽으로 치고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트웽이 도망치는 데 성공한 후에 서리 백작은 [[스털링 성]]의 수비병들을 고립된 상태로 남겨두고 스코틀랜드의 저지대를 반역자들의 영향력에 방치해 둔 채 다리의 파괴를 명령한 후 베릭(Berwick)으로 퇴각했다. 스코틀랜드의 하이 스튜어드(High Steward)인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와 [[레녹스 백작 말콤]](Malcolm, Earl of Lennox)은 서리 백작의 군대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다리 북부에서 잉글랜드군이 대패하는 모습을 보고 퇴각했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보급 마차들은 숲이 우거진 늪지대인 포우즈(The Pows)에서 제임스 스튜어트와 다른 스코틀랜드의 영주들에게 공격을 당하였고, 많은 패잔병들이 이들에게 살해당했다.
 
전투지점은 전투로부터 얼마 후에 새워진세워진 오늘날 스털링 다리의 상류 쪽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투는 윌리엄 월리스의 중대한 승리의 하나로 끝을 맺었다.
 
==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