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SS기갑사단 히틀러유겐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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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캐나다군 포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절망과 광기 그리고 분노로 가득찬 히틀러유겐트의 어린 병사들이 총으로 혹은 구타로 포로들을 살해했다고 한다. 심지어 도로 위을 행군하던 중에 트럭으로 포로를 깔아뭉개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당일 전투로 인한 양측의 사상자 수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양군의 피해는 전사 약 80명 그리고 포로 및 부상 175명 정도였다. 한쪽도 딱히 우세를 점하지 못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마이어 SS대령은 높은 종탑을 가져 주변을 살펴보는 데 최적을 조건을 자랑하는 [[아르덴 수도원]]에 지휘 본부를 설치했다. [[6월 7일]] 초저녁 마이어 SS대령은 연대의 다음 작전 행동을 짜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12명이 넘는 캐나다군 포로를 심문했는데, 심문이 끝난 후 그 포로들 전부가 수도원 뜰에서 살해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히틀러유겐트 사단에 항복한 캐나다군 포로 100여 명 전부가 살해당했다. 마이어의 연대는 요충지인 [[카르피케]](Carpiquet) 비행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오티]](Authie)와 [[부롱]](Buron) 마을 근방에 배치되었다. 캐나다 제9 보병 여단이 진격해 들어오는 걸 저지하기 위해 제25 SS 기갑척탄병 연대는 다음 날까지 제26 SS 기갑척탄병 연대의 지원 없이 전투를 치르었고치렀고, 6월 8일에는 "캐나다 고지 경보병 연대(The Highland Light Infantry of Canada)"와 치열한 육박전을 벌여가면서까지 오티와 부롱을 사수했다.
 
[[6월 8일]] [[빌헬름 몽케]] SS중령의 제26 SS 기갑척탄병 연대가 전선에 도착했다. 마이어 SS대령의 제25 SS 기갑척탄병 연대가 캐나다군 일부를 격퇴했지만 캐나다 제7 보병 여단이 독일 전선에서 겨우 약 3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 두 곳을 점령해 버렸다. 캐나다 제7 보병 여단은 제25 SS 기갑척탄병 연대의 후방을 가로질렀고, 제26 SS 기갑척탄병 연대가 서쪽에서 동 여단을 죄어들어 갔다.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부대 배치를 끝낸 제26 SS 기갑척탄병 연대는 [[노레 앙 베상]](Norrey-en-bessin)을 향한 맹진격을 개시했다. 제26 SS 기갑척탄병 연대는 캐나다군의 방어선을 맹렬하게 파고들어 서쪽에 위치한 영국군과 그들 사이에 깊을 골을 형성시켰다. 다시 한 번 정찰 없이 캐나군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히틀러유겐트 사단의 어린 병사들이 강고하게 구축된 진지로부터 빗발처럼 쏟아지는 포화 속으로 맹렬하게 뛰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