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티케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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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시작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후에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이견은 [[라오디케이아의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Laodicea)에 의해 나타났다. 콘스탄티노플 총 주교가 되게 된 [[안티오키아 학파]]의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또다시 논쟁이 재현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의 호칭으로 불거졌는데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를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려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불려야 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마리아에 대한 호칭 문제가 아니라 예수의 신성에 대한 문제였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지만 인간적인 본성과 인격만가지고 탄생하셨으며 신적 본성과 인격은 마리아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과 두 인격을 지녔다고 주장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갈등을 빚어 교회가 혼란에 휩싸이자 431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에베소에서 공의회를 열었다. 여기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단죄되었고 후에 페트라(Petra)라는 돌산으로 된 시에서 여생을 보내야 했다.
그리스도의 이성에 대한 논쟁은 또 다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사이에 일어났다. 콘스탄티노플의 에우티케스가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본질이나 인간과는 동일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논란에 불을 붙였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에우티케스는 이단으로 단죄되었고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이 정립되었다.<ref>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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