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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석(鄭仁石)이라는 이의 딸로 태어났으며, 본디 그 신분은 천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왕조실록|실록]]에 따르면, [[1488년]](성종 19년) [[음력 9월 18일]]자에 '숙용 정씨(귀인 정씨)의 동생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상궁을 영구히 양인(良人)이 되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모후인 [[폐비 윤씨]]의 죽음이 모두 귀인 정씨와 성종의 또다른 후궁인 [[귀인 엄씨|엄은소사]]등의 참소때문이라고 판단하여, 그녀들을 매우 미워했다.
 
[[1504년]](연산군 10년) [[음력 3월 20일]] 밤, 연산군은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를 [[창경궁]] 뜰에 묶어놓고 정씨의 소생인 [[안양군]]과 [[봉안군]]을 잡아와, 그녀를 마구 때리게 했다. 당시 날이 어두워 안양군은 어머니임을 짐작하지 못하고 마구 때렸으나, 봉안군은 어머니임을 알아차리고 때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연산군은 더욱 화가 나 그녀들을 매우 치고 짓밟아 마침내 죽이고 말았다. 그러고도 연산군은 안양군과 봉안군을 [[소혜왕후|인수대비]]에게로 끌고 가 갖은 행패를 부렸으며, 이어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그녀들의 시체를 모두 찢어 젓갈을 만들어 산천(山川)에 뿌려버리라고 지시했다. 이후 안양군과 봉안군도 외딴 섬에 유배시킨 후, 1년 후인 [[1505년]]에 모두 죽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