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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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기록된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는 17세기경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처음으로 이 나라를 목격한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과의 접촉, 그리고 최초의 영국인 정착자들에 관한 문제들 등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드림타임]]==
== 선사 시대와 발견 ==
호주 원주민들의 역사 선사 시대 (5만년전~)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인 [[애버리진]]은 현재로부터 약 5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바다가 얕아진 사이에 동남아로부터 배를 타고 호주로 도착하였다. 그 후 2~4만년간 간빙기가 오면서 다른 대륙들과 완전히 동떨어진 자신만의 문화를 구축하게 된다.
 
처음 유럽인들이 호주를 발견했을 때 약 100만명의 원주민(애버리진)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300여개의 부족국가에서는 적어도 250개의 언어 및 700여개의 방언이 사용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각 애버리진의 클랜들은 자신만의 토템을 갖고 있었다.
 
== 유럽인들에게 발견된 호주 ==
 
17세기에 [[네덜란드]]의 모험가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하자 연안(沿岸) 탐험을 실시하여 ‘신(新) 네덜란드’라 명명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들에게 발견될 당시 약 100만명의 애버리진과 300여개의 부족국가가 있었고 이들 사이에서 적어도 250개의 언어 및 700여개의 방언이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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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 ==
영국의 죄수 폭증과 미국 독립혁명으로 [[뉴 사우스 웨일즈 주뉴사우스웨일즈주]]에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1788년]] [[1월 26일]], 11척의 배에 1500명의 인원이 탑승한 첫 함대가 시드니 항구에 도착하고 마지막 죄수 호송인 [[1868년]]까지 약 16만명에 달하는 죄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로 호송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1790년대 부터 세계 각지에서 자유 정착민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하였다.
 
==골드 러쉬==
 
[[빅토리아주]]와 [[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 시작된 금광시대는 중국부터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영국 식민지 총독은 가혹한 세금 및 결정을 내리고, 결국 [[1854년]] 유레카 감옥에서 유혈 투쟁이 일어난다. 이를 [[유레카 혁명]] 이라고 한다. [[1880년]]대 시드니와 [[멜버른]]의 세련된 현재적인 모습은 이 금광시대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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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멜버른에 있는 [[유레카 타워]]는 이 유레카 혁명을 기념한 것이다.
 
== 독립과새로운 참전국가로의 독립==
[[1901년]] [[1월 1일]]에 6개의 식민지 연합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로 독립하였다.
 
==세계대전 참전==
[[제 1차 세계대전]] 및 [[제 2차 세계대전]]에 오스트레일리아 및 뉴질랜드 국민들 약 40만명 정도가 참전하였고 그 중 약 6만명이 전사했다고 알려진다. 현재도 [[안작]](ANZAC)은 중요한 호주의 역사적인 날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