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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94년]] 미국의 [[LA 다저스]] 팀과 계약을 맺고 미국 무대에 첫발을 내딛었다. 플라이볼 투수로서 파울 지역이 넓고 외야 역시 넓은 다저스의 홈구장인 다저스 스타디움에 궁합이 맞는 모습을 보이며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2000년]] 시즌에 18승 10패 평균 자책 3.27, 삼진 217개를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으며 이듬해인 [[2001년]] 15승 11패의 시즌 성적과 함께 자유 계약 신분을 얻게 되었다. 2002년에는 5년 계약에 6500만 달러의 조건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팀을 옮겼다. 그러나 이적 첫해인 2002년 시즌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을 하였으며 타자들에게 유리한 [[야구]]장으로 유명한 텍사스의 홈구장인 [[알링턴 구장]](아메리퀘스트 필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25번의 선발에서 9승 8패 5.75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만다. 이듬해인 2003시즌은 부상으로 7차례만을 등판하여 1승 3패 방어율7.58을 기록했다.
 
2004년 시즌 역시 16차례의 선발 등판 결과 4승 7패 방어율 5.46의 좋지 않은 성적을 냈다. 이 기간은 텍사스 팀 역사상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라는 부담감과 겹쳐 이 기간은 그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2005년 시즌은 재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4월 14일]] [[LA 에인절스]]에 첫승을 거둔 후 [[뉴욕 양키스와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를레드삭스]]를 연파한 것이다. 그리고 [[6월 5일]]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미국 진출 11년 만에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을 얻어냈다. 그러나 이후 내셔널 리그 소속팀인 [[샌디에이고 파드레스파드리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대한민국 대표 선수로선수]]로 4경기에 출전해 12회를 던지며 평균 자책 0.00으로 3세이브를 올리는 눈부신 활약을 하며 팀의 4강 진출에 큰 기여를 했다.
 
2005년 11월 30일 박리혜씨와 하와이에서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