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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인류복음화성의 청사 건물은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1644년에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로 교체되었다. 건물과 건물 안 경당은 보로미니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역사==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의 교서 Inscrutabili Divinae에 의해 가톨릭 신앙의 확산을 촉진하고 비 가톨릭 국가들에서의 가톨릭교회 상황 통제를 관리하는 기구로서 포교성성이 설립되었다. 포교성성이 가진 역할에 내재한 중요성과 권한의 특별 범위로 말미암아 포교성성 장관 [[추기경]]은 '붉은 교황'으로 불리게 되었다.
 
[[식민주의|식민지 시대]] 초창기에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두 [[개신교]] 국가가 식민지 정복 활동을 넓혀가면서 원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적 신앙을 보급해나가자, 교황청에서는 상업제국의 결과물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이 확장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였다. 1648년, [[30년 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의 교파적 균형이 공식적으로 확립되어 영구히 정착하였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들에 의해 탐험이 되고 있었던 광활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지역들은 새로운 복음화 장소로 떠올랐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치세(1572-1585) 때부터 이미 포교성성과 관련하여 비공식적으로 설립한 추기경 위원회가 존재하였는데, 주로 [[그리스인]], [[슬라브인]], [[시리아인]], [[이집트인]], [[아비시니아인]] 등 오랜 역사를 가진 동방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과 로마의 일치를 진행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의 목표였다. [[교리문답]]들은 여러 언어로 출판되었으며 신학생들은 [[말라바르]]와 같이 먼 곳까지 파견되었다. 가장 구체적인 성과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에 대부분 집중된 [[루테니아]] 가톨릭 공동체가 로마에 귀일한 사건이다. 두 조직의 합일은 1508년 [[브레스트]]에서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역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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