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락논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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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내부에서 인물성동론을 주장하며 본성의 선함을 중시한 이들을 [[낙론]]이라 했고, 인물성이론을 주장하여 기질의 발현을 중시한 이들을 [[호론]]이라 했다. 호(湖)는 충청도, 낙(洛)은 서울을 의미하여 각 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근거지를 뜻하였다. 호락논쟁은 성리학에 내재된 모순을 둘러싼 논쟁으로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란 이후 악화된 강상윤리 문제가 지배 엘리트들에게 포착되고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청나라 문물의 도입 문제로 연결되기도 하여, [[홍대용]], [[박지원 (1737년)|박지원]] 등의 [[북학파]]는 낙론으로서 호락논쟁에 깊이 관여했다.
 
당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한족의 명나라는 멸망하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다. 조선은 호란 이후로 북벌을 추진하기도 하였지만, 청나라는 중국의 지배를 더 굳건하게 하고 있었으며, 문화를 더 발전시키고 있었다. 호락논쟁 중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에 서있는 입장은 필연적으로 청나라의 정통선을 인정하느냐 또는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 사회의 발전에 이용할 수 있는냐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ref>문장원, [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html?no=25772 ‘타자’(他者)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조선 호락(湖洛)논쟁의 핵심], M이코노미뉴스</ref>
 
== 외부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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