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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民畵)는 과거에 실용(생활공간의 장식이나 민속적인 관습에 따름)을 목적으로 무명인에 의하여 그려졌던 대중적인 실용화를 말한다. 또한 '''민화장'''이란 용어는 민화를 잘 그리는 사람을 말한다.
 
'''민화'''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llang|ja|柳宗悅}}, [[1889년]]∼[[1961년]])로, 그는 '민속적 회화'라는 의미로 민화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뒤 <공예적 회화>라는 글에서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유통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야나기가 민화란민[[화란 용어를 쓰기 이전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민화에]] 대한 개념은 있었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여염집의 병풍ㆍ족자 또는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을 '속화(俗畫)'라고 칭하였다.
 
민화는 산수, 화조 등의 정통 회화를 모방한 것으로 소박하고 파격적이며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이다.<ref>{{글로벌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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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의 기원은 선사시대 [[암각화]](岩刻畵)에서 물고기·거북·사슴·호랑이 등에서 민화의 원초적인 화맥(畫脈)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四神圖)·신선도, 백제 산수문전(山水文塼)의 산수도, 등은 민화적 소재이며, 특히 [[처용설화]](處容說話)에서 처용의 화상을 문설주에 붙이면 [[역신]](疫神)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벽사(辟邪)를 위한 그림을 대문에 붙였던 풍습은 조선 말기까지도 별성마마 그림 등을 붙이던 풍습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에 보이는 세화(歲畫)와 도화서 화원들의 그림에 대한 기록을 볼 때 민화는 우리 민족과 함께 존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특징]]==
민화와 정통회화가 같은 종류로 중복되는 것을 볼 수 있으나, 감상적 회화성(繪畫性)에 화관(畫觀)을 둔 정통회화와 실용적 상징성에 [화관을 둔 민화와는 차이가차]이가 있다. 정통회화에서 볼 수 있는 종류는 민화에서도 대부분 존재하며, 또 민화만이 가지고 있는 대상도 상당히 많아 어느 부류의 그림보다 광범위하고 풍부하다. 민화를 내용상으로 보면 무속(巫俗)ㆍ도교(道敎)·불교·유교계통과 장식용 민화로 대분된다.
 
무속과 도교계통의 그림은 장생도(長生圖) 종류로 십장생도(十長生圖)·송학도(松鶴圖)·군학도(郡鶴圖)·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군록도(群鹿圖)·천리반송도(千里盤松圖)·오봉일월도(五峯日月圖) 등이 있다. 방위신(方位神)으로는 청룡(靑龍)·백호(白虎)·주작(朱雀)·현무(玄武)·황제(黃帝) 등이 있고 12지신상(支神像)의 민화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을 위한 민속에 얽힌 작품이다. 호랑이 그림으로는 작호도(鵲虎圖)·호피도(虎皮圖) 등과 산신도(山神圖)에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밖에 닭·개·사자 그림 등 벽사진경의 뜻을 지니고 있다. 용왕도(龍王圖)는 봉황·기린과 함께 상서로움을 기원하는 그림이며, 칠성(七星)·별성(別星)·오방신장(五方神將) 등 무속과 관계있는 그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