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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기'''(雙冀, ? ~ ?)는 [[고려]]의 학자이다. 본래 [[후주]]의 시대리평사 직에 있었으나, 사신단으로써 [[고려]]에 왔다가 신병으로 인해 체류하다 귀화하여 [[고려 광종|광종]]의 개혁에 기여하였다. [[당나라|당]](唐)의 과거임용제도를 본따 [[과거제]]를 신설할 것을 건의하였고, 과거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는 시험관에 해당하는 지공거직에 임명되었다. 참고로 [[고려 광종|광종]]{{·}} [[고려 경종|경종]]{{·}} [[고려 성종|성종]] 대의 지공거는 주로 쌍기와 같은 귀화인인 한림학사들이 임명되었다.
 
== 평가 ==
현재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광종대의 혁신적인 개혁에서의 쌍기의 역할이 과거제도에 한정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좀더 광범위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이후의 학자들이 광종대의 과거제도는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쌍기를 비판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최승로(崔承老)는 광종을 평한 가운데 "쌍기를 등용한 이후로는 문사(文士)를 높이고 중히 여겨 은례(恩禮)가 지나쳤다"고 했으며, 이제현(李齊賢)도 쌍기를 "보탬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부화(浮華)의 문(文)을 주창하여 후세에 큰 폐단을 남겼다"고 평하고 있다. 사실 광종 때에 과거는 자주 실시된 것도 아니고, 또 당시 관료층 구성에 과거출신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후대에 쌍기가 비판받는 것은 그가 광종의 다른 개혁정책에도 개입하여 당시 이해관계가 달랐던 사람들과의 사이에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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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한국 사람}}
[[분류:고려의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