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스 6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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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년]] 콘스탄티누스가 성년이 되었음에도 어머니 이레네는 권력을 놓지 않았고 아들과 마찰을 벌여 급기야 아들을 투옥했다. 성상옹호론자였던 이레네에 반대하는 [[성상파괴운동|성상파괴론자]]들은 콘스탄티누스를 중심으로 뭉쳐서 그를 다시 단독황제로 추대하고 이레네를 황궁에 감금했다. 단독황제가 된 이후에도 힘없고 유약했던 콘스탄티누스는 연이은 [[이슬람]]의 침공과 [[불가르족]]의 침입에 무력한 모습을 보였고 이로 인해 불만이 고조되어 레오 4세의 형제들, 즉 콘스탄티누스의 삼촌들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났을 때는 이를 잔혹하게 진압하여 백성들의 신망을 잃었다. 그는 [[792년]] 이레네를 복귀시켰다.
 
[[795년]] 황제는 아내와 이혼하고 궁녀였던 애인 테오도테를 새 [[황후]]로 삼았는데 이것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신앙심 깊은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이 문제는 이른바 ‘간통 논쟁(Moechian controversy)’을 낳았고 향후 비잔티움 제국의 종교 분쟁을 야기하게 된다. 또한 그는 점점 더 성상파괴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그에 대한 반대의 물결이 거세졌다.

[[797년]] 6월 어머니 이레네는 아들에게 반란을 일으켜 내쫓는 데 성공한다. 콘스탄티누스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도망쳤으나 결국 붙잡혔다. [[8월 15일]] 이레네는 아들의 눈알을 뽑아버렸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눈알을 뽑힌 지 얼마 안 가 곧 죽은 것으로 보인다. 황제인 아들의 눈을 뽑고 폐위시킨 비정한 어머니 이레네는 단독으로 제위 계승자가 되었다.
 
== 같이 보기 ==
* [[이레네]]
* [[샤를마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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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797년 죽음]]
[[분류:비잔티움의 황제]]
[[분류:암살된 사람]]
 
 
[[bg:Константин 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