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1세 (카스티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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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펠리페는 어머니 마리가 낙마사고로 죽은 [[1482년]] 부르고뉴 공작의 칭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잘생긴 용모에 매력적이고 화술이 뛰어났으며 스포츠와 사냥을 좋아했다. 펠리페는 [[1496년]]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딸 [[아라곤의 후아나|후아나]]와 결혼했다. 후아나가 남편을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그에게 광적으로 집착한 반면 펠리페는 여성편력이 끊이지 않았고 아내 외에도 여러 애인을 만들었다. 펠리페는 장래의 카스티야 여왕 부군이었지만 스페인을 싫어해서 아내를 홀로 남겨둔 채 [[플랑드르]]로 돌아왔고 후아나는 크게 낙심하며 정신적으로 불안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후아나는 플랑드르까지 남편을 쫓아갔고 남편의 애인에게 심한 질투를 보였다. 펠리페는 후아나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부부의 관계는 악화됐지만 [[1504년]] 후아나가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자 펠리페는 카스티야의 영토와 막대한 재산을 탐냈다. 그는 여왕의 남편으로서 공동통치의 권리를 주장했으며 카스티야의 왕을 자처했다. 결국 펠리페는 정신병 증세를 보이는 후아나의 섭정이 되었지만 그로부터 2년 뒤 [[부르고스]]에서 죽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후아나의 정신착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 출생 ===
아버지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 (신성 로마 제국)|막시밀리안 1세]]이고 어머니는 [[부귀공 마리|부르고뉴의 마리]] 이다. 펠리페는 어머니 마리가 낙마사고로 죽은 [[1482년]] 부르고뉴 공작의 칭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잘생긴 용모에 매력적이고 화술이 뛰어났으며 스포츠와 사냥을 좋아했다.
 
=== 결혼 ===
펠리페는 [[1496년]]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딸 [[아라곤의 후아나|후아나]]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프랑스 견제의 필요성에 공감한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간에 맺어진 정략결혼이었다. [[백년전쟁]] 종결후 중앙집권에 성공한 프랑스는 서서히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1494년에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했는데, 이는 황제의 권한에 대한 침해였다. 역사적으로 볼때 이탈리아의 관할권은 명목상 신성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ref>송동훈 <대항해 시대의 탄생> 시공사 2019년 p243</ref>
 
아울러 스페인은 방계 가문이 통치하는 나폴리를 지켜야 했다. 프랑스를 경계할 필요성을 느낀 황제 [[막시밀리안 1세 (신성 로마 황제)|막시밀리안 1세]]와 스페인의 [[페란도 2세|페르난도 2세]]는 자녀들의 혼인을 통해 동맹을 맺었다. 스페인의 후안 왕자는 막시밀리안 1세의 [[마르가레테 폰 외스터라이히 여대공 (1480년)|마르가레테]]와, 스페인의 광녀 [[후아나 (카스티야)|후아나]] 공주는 [[펠리페 1세 (카스티야)|펠리페 1세]]와 이중 결혼(겹 사돈)을 맺어 동맹을 공고히 하였다. 후아나와 펠리페 1세의 결혼식은 1496년 10월 20일 현 벨기에 리르에서 열렸다.<ref>송동훈 <대항해 시대의 탄생> 시공사 p245</ref>
 
펠리페는 어머니 마리가 낙마사고로 죽은 [[1482년]] 부르고뉴 공작의 칭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잘생긴 용모에 매력적이고 화술이 뛰어났으며 스포츠와 사냥을 좋아했다. 펠리페는 [[1496년]]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딸 [[아라곤의 후아나|후아나]]와 결혼했다. 후아나가 남편을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그에게 광적으로 집착한 반면 펠리페는 여성편력이 끊이지 않았고 아내 외에도 여러 애인을 만들었다. 펠리페는 장래의 카스티야 여왕 부군이었지만 스페인을 싫어해서 아내를 홀로 남겨둔 채 [[플랑드르]]로 돌아왔고 후아나는 크게 낙심하며 정신적으로 불안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후아나는 플랑드르까지 남편을 쫓아갔고 남편의 애인에게 심한 질투를 보였다. 펠리페는 후아나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부부의 관계는 악화됐지만 [[1504년]] 후아나가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자 펠리페는 카스티야의 영토와 막대한 재산을 탐냈다. 그는 여왕의 남편으로서 공동통치의 권리를 주장했으며 카스티야의 왕을 자처했다. 결국 펠리페는 정신병 증세를 보이는 후아나의 섭정이 되었지만 그로부터 2년 뒤 [[부르고스]]에서 죽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후아나의 정신착란을 더욱 심화시켰다악화되었다.
 
=== 사망 ===
[[1504년]] 후아나가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자 펠리페는 카스티야의 영토와 막대한 재산을 탐냈다. 그는 여왕의 남편으로서 공동통치의 권리를 주장했으며 카스티야의 왕을 자처했다. 결국 펠리페는 정신병 증세를 보이는 후아나의 섭정이 되었지만 그로부터 2년 뒤 [[부르고스]]에서 죽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후아나의 정신착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 자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