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피 리브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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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99년]] [[리쿠드 당]] 소속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아리엘 샤론]] 정권의 여러 부처 각료로 재직하였다. 지역개발부, 농업농촌개발부, 주택건설부 장관으로 재직했고, [[2004년]]부터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2005년]] 샤론 총리가 리쿠드 당을 탈당하며 만든 [[카디마 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2006년]] 총선에서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며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졌으며, 새로 출범한 [[에후드 올메르트]] 정권의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스라엘 역사상이스라엘에서 [[1950년대]] ~ [[1960년대]]에 [[골다 메이어]]가 외무장관으로 재직한 이후 40년만에 여성여성으로 외무장관이 되었다된 것이었다.
 
[[2008년]] 올메르트 총리가 부패 스캔들로 사임 의사를 밝힌 후 리브니는 카디마 당 당수직에 도전하였다. [[9월 17일]] 당수 선거 결과 가장 높은 득표율을 얻어 당수가 되었다. 이에 리브니는 골다 메이어 이후 사상 두 번째로 여성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메르트는 [[9월 21일]] 사임총리직도 정식으로 예정이였지만내놓았으나, 사임하지리브니는 않아 현재연정을 이스라엘의구성하지 못해 올메르트가 계속 총리직을 대행했다. 여러 정당간의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리브니는 계속 연정 구성에 실패, [[2009년 2월]] 조기 총선을 치르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2008년]] 말과 [[2009년]] 초 사이에 일어난 [[2008-2009년 이스라엘-가자 지구 전쟁]]에서는 외무장관으로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는데, 이는 인기가 떨어진 그의 당의 지지율을 회복해 보기 위한 계산이었다는 평가도 있었다.{{출처}}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카디마 당은 의석을 많이 잃었으나, 1석차로 최다 의석은 확보하였다. 그러나 리쿠드 당이 연정을 구성하여 [[베냐민 네타냐후]]가 임시총리가 총리이다되었다.
 
{{토막글|이스라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