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메이 대분화: 두 판 사이의 차이

203 바이트 추가됨 ,  8개월 전
편집 요약 없음
잔글 (봇: 그림 추가)
편집 요약 없음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파일:浅間山天明大噴火 夜分大焼之図.jpg|thumb|260x260픽셀|덴메이 대분화]]
'''덴메이 대분화'''는 [[1783년]]의 [[아사마산]]의 대분화를 말한다. 용암류와 화산쇄설류가 발생, [[군마현]] 방향으로 흘렀다. 나가노하라마치(長野原町)나 쓰마고이무라(嬬恋村) 간바라(鎌原)지역 등 아가쓰마 강(吾妻川) 유역을 중심으로 1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浅間焼泥押). 이 용암류는 화구로부터 흘러나온 용암이 직접 흘러내린 것이 아니라, 분출한 용암이 화구 부근에 퇴적되어 굳었다가 다시 흘러내린 화산쇄설성용암(火砕成溶岩)으로 생각되고 있다. [[에도시대]]의 덴메이 연간에는 도호쿠 지방에서 약 1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덴메이 대기근]]이 일어났다. 같은 덴메이 연간에 아사마 산이 덴메이의 대분화를 일으킨 것으로 인해, 아사마 산의 영향으로 기근이 일어났다는 인식이 장기간 있어 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덴메이 대기근은 덴메이 대분화 이전에 시작되고 있었으며, 또 대기근 이전에 [[아이슬란드]]에서 [[라카기가르 화산]](Lakagígar, Laki)의 대분화에 의해 대량의 [[에어로졸]]이 방출된 사실로 인해, 기상 조건상으로도 아사마의 분화보다는 라카기가르 분화의 영향이 강했다고 여겨진다. 라카기가르의 에어로졸은 프랑스에서도 흉작의 원인이 되었고,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당시의 화산재에 대해서는 런던에서도 기록으로 남을 정도였다.
'''덴메이 분화'''는 [[1783년]] [[아사마 산]]위 [[분화]]를 말한다. 덴메이 분화로 인하여 상공으로 분출된 [[화산화]]는 햇볓을 차단하여 수년간 계속된 [[냉해]]를 가져왔다. 이 냉해는 [[덴메이 기근]] 이라고 부른다. 덴메이 대기근으로 피폐화된 농촌에는 [[식량난]]과 [[전염병]] 등이 생겼다.특히 동북 지방에서 다수의 아사자가 나와 각지에서 민란과 폭동이 일어나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웠다.또한 [[아사마 산]]이 [[대분화]]를 일으켜 북쪽으로 12 km 떨어진 [[간바라]] 마을에서는 모든 가옥이 [[화산쇄설류]]에 매몰되어 주민의 85%가 목숨을 잃었다.
 
== 발굴 조사 ==
약 200년이 지나 1979년 매몰된 마을을 발굴하는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조사에서 [[화산쇄설류]]에 매몰된 분화의 희생자로 판단되는 두 사람 분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 전에도 부근에서 어른과 어린이 한 사람씩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화산쇄설류]]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유골이 발견된 많지 않은 사례이다.
 
== 참조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21108&cid=200000000&categoryId=200003609 두산백과 참조]
* {{서적 인용|제목=지진과 화산의 궁금증 100가지|쪽=59|출판사=푸른길|날짜=2010-12-06|확인날짜=2013-12-13}}
 
[[분류:1783년 일본]]